12 panels · Automated checks complete

보건소의 회신은 짧았다. 요청하신 기간의 진료 기록 및 행정 문서는 보존 연한 경과로 폐기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폐기 일자는 작년 시월.
다원은 수화기를 든 채 달력을 보았다.
"보존 연한 십 년. 작년에 파쇄됐대요. 십일 년 전 기록이 필요한 해에, 십 년 연한이라니."
전화 너머의 유나가 잠깐 말이 없었다.
"연한 자체는 규정이에요. 근데 파쇄 신청이 누구 명의였는지는 알아볼 수 있어요. 정기 파쇄인지, 신청 파쇄인지도요."
"부탁해요. 그리고 유나 씨 — 공식 기록이 없으면, 십일 년 전은 이제 어디에 남아 있죠?"
"사람의 기억이나, 사적인 기록이요. 증거 가치는 후자가 위고요."
"하나 더요. 파쇄 확인하다 보니 — 그 시기에 다른 조회가 한 건 있었어요. 재작년 겨울에, 같은 기간 기록 열람 신청이요. 신청인 란은 연구 목적, 소속은 뭍의 의료 자문 법인이에요."
"열람은 됐대요?"
"됐대요. 파쇄 열 달 전에요. 그러니까 — 누가 먼저 읽고, 그다음에 종이가 없어진 거예요. 순서가 그래요."
읽고, 그다음에 파쇄. 정기 파쇄라면 우연이고, 신청 파쇄라면 설계였다. 유나는 그 확인을 더 파 보겠다고 했다.

사적인 기록. 다원은 전화를 끊고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성혜의 유품 상자 — 순단이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는, 다락의 그 상자. 노트를 진료소로 보낸 사람이 상자는 다락에 두었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닷새 뒤 저녁, 순단의 다락에서 — 가 아니라, 그 전에 마루에서, 다원은 값을 먼저 말했다.
"할머니. 상자를 열면요, 소장님이 이 수확을 알고 계셨다는 게 나올 수 있어요.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셨다는 것도요. 그걸 알게 되는 값이 있어요. 그 값은 제가 아니라 할머니가 치르시는 거고요."
순단은 마루 끝의 어둑한 마당을 오래 보았다.
"성혜가 말년에 말이 없어진 거, 내가 제일 먼저 알았다. 벗이 입을 닫으면 벗은 묻지 않는 법이라, 나도 안 물었지. 그게 지키는 건 줄 알았고."
"…"

"열면 성혜가 알고도 입 다문 세월을 알게 된다는 거지. 그래도 열어야지. 벗의 침묵을 지키는 게 벗을 지키는 게 아닐 때도 있으니."
순단은 다락에 혼자 올라갔다. 상자는 남의 손에 들려 보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내려온 상자는 사과 궤짝 크기였고, 노끈 매듭이 두 번 감겨 있었다. 순단은 상자 위의 먼지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고, 잠깐 그대로 있다가, 다원 쪽으로 밀었다.
"진료소에서 열어라. 성혜 물건은 성혜 자리에서 여는 게 맞다."
상자를 나르는 길에 바다를 만났다. 리어카를 끌고 온 그는 상자를 싣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선착장 언덕을 오르며 그가 한 말은 하나였다.
"무거운 거예요, 가벼운 거예요?"
"무게로는 가볍고, 다른 걸로는 무거워요."
"그런 짐이 제일 힘들죠. 리어카가 못 도와주는 짐이요."

진료소 책상 위에서 상자는 세 켜로 열렸다. 맨 위에는 옛 사진과 임명장 — 부임 삼십팔 년의 껍질들. 가운데 켜에서 첫 조각이 나왔다.
"이 켜는 니가 봐라. 나는 눈이 어두워."
순단은 그렇게 말했지만, 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둘 다 알았다. 다원은 가운데 켜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책상에 눕혔다. 서류 봉투 몇 장, 실로 묶인 공책, 신문지에 싼 뭉치.
공책 한 권 — 겉장에 '남망여'라고만 적힌. 안에는 노트에서 찢겨 나간 항목의 사본 초안이 성혜의 글씨로 옮겨져 있었다. 사고 전날의 왕진 기록. 낚싯배 선주의 아버지 — 검진에서 중증 소견, 뭍 병원행 권유를 받았다는 기록. 그리고 옮겨 적기의 끝에, 기록이 아니라 물음이 한 줄.
배가 왜 그 밤에 떴나.
"이거 — 노트에서 찢긴 항목이에요. 소장님이 찢어서 없앤 게 아니라, 옮겨 적고 나서 찢어 숨긴 거예요. 노트는 누가 읽을지 모르니까. 상자는 —"

"상자는 내 다락이니까."
둘째 조각은 근무 수첩이었다. 사고가 난 해의 것. 페이지마다 바를 정자가 다섯 획씩 묶여 늘어 갔다. 수첩은 사고 두 달 전부터 진단서를 세고 있었다.
"뭘 세는 거냐, 이건."
"진단서요. 그해 공보의가 발행한 진단서 수예요. 여기 — 주간 합계에 동그라미. 평년의 세 배쯤 돼요. 검진 나오고, 중증 소견 나오고, 진단서 나오고. 지금 우리 섬에서 도는 구조가 십일 년 전에 이미 한 번 돌았던 거예요."
"성혜가 이걸 세고 있었단 말이지. 밤마다."
"세는 방식을 보세요, 할머니. 날짜별로, 발행 사유별로 갈라서 셌어요. 이건 그냥 세는 게 아니라 — 분류예요. 언젠가 누구한테 보여 줄 것처럼 세어 놨어요."
"보여 줄 것처럼 세고, 아무한테도 안 보여 줬다는 거네."

"네. 그게 이 상자의 제일 이상한 점이에요."
셋째 조각은 스크랩이었다. 뭍 신문의 보험 특집 기사들 — 과잉 진단, 요양병원, 청구 대행. 그리고 기사 귀퉁이마다 성혜의 붉은 밑줄. 스크랩 귀퉁이의 명함 — 의료자문 임규홍. 성혜는 그의 다음 직함까지 모아 두고 있었다.
다원은 세 조각을 책상에 나란히 놓고, 순단이 들으라고 소리 내어 호명했다.
"하나는 앞뒤 페이지, 둘은 근무 수첩, 셋은 스크랩이에요."
앞뒤 페이지가 남망여의 밤에 물음을 대고, 수첩이 그해의 진단서 수확을 세고, 스크랩이 그 구조의 다음 십 년을 추적한다 — 성혜는 알았고, 추적했다. 십일 년을.
순단은 명함을 오래 보았다.

"임규홍. 그 공보의구나. 순하게 생겼었는데."
"아세요?"
"섬에 이 년 있었지. 인사성 밝고, 노인들한테 잘하고. 남망여 사고 나고 얼마 안 돼 임기 끝나 나갔어. 그 뒤로는 —"
"그 뒤로는요?"
"소식 없었지. 근데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 사고 나고 성혜가 딱 한 번, 그 사람 얘기를 물은 적이 있어. 임 선생 나가는 배가 언제냐고. 배웅하려나 보다 했는데 — 배웅을 안 갔어. 시간만 물어보고."
"떠나는 걸 확인만 한 거네요."
"지금 생각하니 그렇네. 그때는 몰랐지."

마당에서 개가 짖은 것이 그때였다. 선착장 쪽에서 올라오는 발소리. 진료소 문이 노크 세 번 — 정확한 간격으로 — 울렸다.
문밖의 남자는 육십 대 초반, 마 소재 재킷에, 섬 선착장에 어울리지 않게 닦인 구두를 신고 있었다.
"정다원 소장님이시죠. 임규홍입니다. 보건소 순회 자문을 맡고 있어서 — 인사가 늦었습니다. 옛날에 이 섬 공보의였습니다."
다원은 문을 열어 주었고, 상자는 진료실 안쪽 — 문에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 규홍은 마루까지만 들어왔다. 딱 예의만큼만.
"먼 길이세요. 순회 자문이 무레도까지는 잘 안 들어오시던데요."
"안 들어왔지요, 여태. 게을렀습니다. 요즘 이 섬 보고서가 재미있어서요."
그는 재미있다는 단어를 쓰고, 반 박자 뒤에 스스로 고쳤다.

"재미라는 말은 실례고 — 인상적이어서요. 막례 여사 건, 보고서로 봤습니다. 훌륭한 감별이었어요. 요즘 현장에서 그런 트리아지 보기 드뭅니다."
"보고서를 보셨어요?"
"자문이라 회람을 받습니다. 좋은 판단은 인용되는 법이지요."
설명 가능한 문장이었다. 회람은 사실이니까. 설명 가능하다는 것까지 계산된 문장이기도 했다. 규홍은 섬의 옛 지명들을 정확한 발음으로 회고했고 — 동짓개, 웃개, 남망여 — 남망여를 발음할 때만 반 박자 느렸다. 그리움인지 측량인지 읽히지 않는 속도였다.
"성혜 선생 얘기를 들었습니다, 작년에.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제 공보의 시절 반은 그 양반한테 배웠지요."
그리고 그는 일어서며, 코트 대신 재킷 단추를 잠그며, 마지막 문장을 놓았다.
"성혜 선생 노트는 잘 있습니까. 그 양반, 뭐든 적는 분이었지요."
"유품은 유족분들이 정리하셨어요."

다원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답도 하지 않았다. 규홍은 그 비답(非答)을 잠깐 보다가, 웃었다.
"그렇겠지요. 기록은 남는 게 좋습니다. 어느 손에 남느냐가 문제지."
닦인 구두가 선착장 쪽으로 내려간 뒤, 다원은 마루에 서서 그 마지막 문장을 두 번 되뇌었다. 노트. 공개된 적 없는 노트. 보고서에도, 회람에도, 노트라는 단어는 없다. 판단 기록이라고만 썼다. 노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섬 안에 셋 — 그리고 지금, 뭍에서 온 넷째가 그 단어를 꺼냈다.
규홍이 남긴 것은 문장만이 아니었다. 마루 끝에 명함이 한 장,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순회 자문 임규홍 — 스크랩 속 명함과 직함이 한 번 더 바뀌어 있었다. 십일 년 동안 세 개의 직함. 공보의, 의료자문, 순회 자문. 자리가 바뀌어도 반경은 같았다 — 진단과 서류와 섬.
다원은 두 명함을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었다. 성혜가 모으기 시작한 목록에 제 손으로 한 장을 보태는 셈이었다.
순단이 마루로 나왔다. 명함과 같은 얼굴을 보고 온 참이었다.
"저 사람이냐. 스크랩의."
"네. 성혜 소장님이 십일 년 모은 이름이 방금 저 문에서 인사하고 갔어요."

유나가 밤배로 건너왔다. 명함 사진과 방문 기록을 보고, 그녀는 수첩부터 폈다.
"임규홍. 조회해 볼게요 — 아니, 조회 기록이 남으면 안 되겠다. 지인 통해서 알아볼게요. 전 공보의에, 현 순회 자문에, 의료 자문 법인이면 — 아까 그 열람 신청 소속하고 겹칠 수 있어요."
"열람하고 파쇄 순서, 그것도요."
"네. 근데 소장님, 오늘부터 하나 바꿔요. 노트하고 상자, 진료소에 두지 마세요. 존재를 아는 입이 밖에 생겼어요. 서류를 읽는 손은 서류를 가지러도 와요."
"어디에 둬요, 그럼."
순단이 마루에서 답했다.
"내 집 다락. 십일 년 있던 자리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게 아니라, 등잔 밑이 제일 안전한 거야."
상자는 그날 밤으로 다락에 돌아갔다 — 다만 이번에는 전 페이지의 사진 대장이 세 벌로 남았다. 진료소에 한 벌, 유나에게 한 벌, 그리고 한 벌은 유나의 습관대로, 쓸 일이 없기를 바라는 사본으로.
그날 밤 다원은 기록을 셋으로 나눠 닫았다. 상자의 세 조각 — 사진 대장과 함께. 규홍의 방문 — 시각, 문장, 특히 마지막 문장. 그리고 수첩의 마지막 장 —

성혜의 수첩은 사고 뒤에도 몇 장을 더 갖고 있었다. 바를 정자는 사고 주간에 멈춰 있었다. 세기를 멈춘 자리에 성혜는 한 줄을 적어 두었다.
세는 것으로는 못 막았다.
다원은 그 문장 아래에 제 질문을 적었다. 비난이 아니라 수사의 질문으로.
그러면 왜 신고하지 않았나. 세는 것 다음에, 무엇을 하려 했나. 십일 년 동안 — 무엇을 기다렸나.
기록을 닫기 전에 다원은 노트를 폈다. 남망여 항목의 찢긴 자리 — 보풀 앉은 단면. 상자의 사본 초안을 그 옆에 놓자, 찢긴 자리가 처음으로 빈자리가 아니게 되었다. 원본은 없어도 내용은 살아 있었다. 성혜는 지운 것이 아니라 옮긴 것이었다 — 읽힐 자리에서 읽히지 않을 자리로.
다원은 노트의 그 페이지 여백에 적었다. 항목 사본 초안 확보 — 상자. 원본 찢김은 은닉이었음. 그리고 반 줄 버릇으로 덧붙였다. 읽는 손을 알던 사람의 은닉.
창밖의 여름밤 바다에 뭍으로 가는 막배의 불이 멀어지고 있었다. 저 배 어딘가에 닦인 구두가 타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확인하러 왔고 — 무엇을 확인해 갔는지는, 그의 마지막 문장만이 힌트였다. 기록은 남는 게 좋습니다. 어느 손에 남느냐가 문제지.
상자는 다락으로 돌아갔고, 사본은 세 벌로 나뉘었고, 질문은 수첩에 남았다. 어느 손에 남느냐의 문제라면 — 답은 오늘 밤, 세 손으로 정해진 셈이었다.
마을 회관 게시판에 설명회 공고가 붙은 것은 그 이튿날 아침이었다. 어르신 건강 검진 결과 설명회 — 주최, 메디플랜 헬스케어. 자문, 임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