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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레도의 아침은 뱃고동으로 온다.
정다원은 약장 정리를 하다 그 소리에 손목시계를 봤다. 여섯 시 사십 분. 부임 삼 주 만에 몸이 외운 시간표였다. 진료소의 공기는 소독약과 마른 미역 냄새 — 전임자의 삼십팔 년이 밴 냄새였다.
책상 위에는 어제 도착한 물건이 그대로 있었다. 대학 노트 여러 권을 실로 묶어 한 덩이로 만든, 표지에 유성 매직으로 '섬 처방'이라 적힌 것. 해녀회장 고순단이 두고 갔다. 임자한테 왔다 — 그 말만 남기고.
다원은 아직 펴 보지 못했다. 남의 판단이 삼십팔 년 치 쌓인 물건을 여는 일이, 판단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쉽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순단이 들어왔다. 일흔넷의 등은 곧고 걸음만 무릎에서 절었다.
"회장님. 무릎 또 그러세요?"
"물때 크면 뼈가 먼저 알아."
"앉으세요. 재고 볼게요."
"새로 온 사람들은 다 기계부터 대더라."
"기계가 반, 손이 반이에요."
"성혜는 손이 팔 할이었다."
순단은 그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놓았고, 다원은 혈압계 커프를 감으며 그 이름의 무게를 받았다. 백성혜. 만난 적 없는 전임자. 책상 위 노트의 주인.
"노트, 왜 저한테 주셨어요?"

"보면 알아."
"안 폈어요, 아직."
"그럼 아직 모르겠네."
다원은 손목부터 잡았다 — 맥과 안부를 같이 확인하는 버릇이었다. 혈압을 재고, 무릎을 짚었다. 부기의 자리가 낯익지 않았다. 그녀는 반 박자 머뭇거리다, 책상의 노트를 끌어당겼다.
임자한테 왔다는 물건은, 환자 앞에서 여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았다.
정자체의 항목들이 넘어갔다. 증상과 처치 — 거기까지는 여느 기록인데, 그 밑이 달랐다. 물때, 뱃길, 집집의 사정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항목마다 붉은 줄로 그은 문장 하나.
한계선, 이라고 첫 장에 적혀 있었다. 이 선을 넘으면 무조건 후송.
순단의 무릎 항목도 있었다. 표기가 이상했다.
'남망여 무릎 — 십일 년. 물때 크면 붓는다. 파스 말고 온찜질.'
"남망여 무릎이 뭐예요?"
"남망여서 다친 무릎이니까 남망여 무릎이지."
순단은 그 말만 하고 입을 닫았다. 다원은 온찜질을 처방했고, 순단은 일어서며 문가에서 한마디를 놓고 갔다.
"잔치 상에 소라 오른다. 저녁에 와."

왕진 두 집을 돌러 나가는 길, 선착장의 부잔교는 간조에 훌쩍 내려앉아 있었다. 도선 무레호의 트랩을 내리며 고바다가 물때를 읊고 있었다 — 열아홉 살 조타수는 시간을 물때로 셈했다.
"소장님, 지금 나가시면 안 돼요. 간조 걸려요. 무레호는 간조 앞뒤로 두 시간을 못 떠요."
"두 시간이나?"
"흘수가 안 나와요. 부잔교도 눕고. 보세요, 저기."
바다가 턱으로 가리킨 부잔교는 훌쩍 내려앉아 트랩이 미끄럼틀처럼 가팔랐다.
"오늘이 백중사리거든요. 물이 제일 크게 움직이는 날. 만조엔 마당까지 올라오고 간조엔 저렇게 바닥을 보여요."
"그걸 다 외워요?"
"물때표는 그냥… 외워져요. 시간표니까. 소장님 두 시에 왕진 가시죠? 그럼 네 시 반물에 맞춰 돌아오세요. 그 뒤로는 배가 눕니다."
다원은 수첩을 꺼냈다. 바다의 눈이 커졌다 — 제 물때 얘기를 받아 적는 어른은 처음이었다.
"그럼 간조에 급한 일이 나면요?"
"남수로는 반물에도 돼요 — 어선이면요."
바다의 목소리가 반 옥타브 내려갔다.
"섬 남쪽으로 도는 물길인데, 할아버지 해도에 있어요. 무레호는 못 가고, 흘수 얕은 어선은 가요. 뭍까지 사십 분."
"사십 분."
다원은 그 숫자에 밑줄을 두 번 그었다. 응급실 칠 년의 손이 하는 일이었다. 진료소로 돌아와 응급 카트를 점검하며, 그녀는 입술만 움직여 오래된 순서를 되뇌었다. 팔, 얼굴, 말. 팔, 얼굴, 말.

백중사리의 한여름, 잔치의 저녁이 왔다.
마당에는 차일이 서고 가마솥에서 김이 올랐다. 국과 수육과 — 소라 삶는 물 냄새. 해녀회의 손들이 소라를 무치고, 아이들 대신 노인들이 마당을 채웠다. 이 섬의 잔치는 평균 연령이 일흔이었다.
"소장, 이리 와 앉아."
순단이 말석의 다원을 상석 쪽으로 끌었다.
"괜찮습니다, 여기가—"
"뭍것이 말석에 앉으면 십 년을 말석에 앉는다. 이리 와."
다원은 국그릇을 받았고, 섬은 그녀에게 처음으로 시끄럽고 따뜻했다. 표상만이라는 이름표를 단 뭍의 남자가 노인들 사이를 돌며 명함 대신 웃음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보험 아저씨라고들 불렀다. 트로트 흥얼거림이 그의 도착 알림인 모양이었다.
첫 번째 쓰러짐은 여덟 시쯤이었다.
박씨 할아버지가 어지럽다며 평상에 누웠다. 십 분 뒤 이씨 할머니가 입 주변이 저리다 했고, 그 십 분 뒤 김 노인이 국그릇을 놓쳤다.

"소라다."
마당의 결론은 빨랐다.
"침샘을 덜 발라냈구먼. 옛날에도 그랬어. 한숨 자면 나아."
다원은 보건소 당직에 유선을 걸었다. 증상을 불렀다. 어지럼 셋, 저림 둘, 구토 하나. 수화기 너머의 답은 매뉴얼의 문장이었다.
"식중독 의심이면 수액 놓으시고요. 경과 관찰하시고, 내일 아침에 다시 연락 주세요."
"셋이 동시에요. 고령입니다. 후송 판단이—"
"소장님, 섬에서 밤배 띄우는 게 더 위험해요. 기상 특보 보셨죠? 헬기는 뇌우라 대기예요. 경과 관찰하세요."
"한 분은 증상이 달라 보입니다."
"다르면 내일 아침에 데리고 나오세요. 저 지금 응급 두 탕째예요."
전화가 끊겼다. 다원은 받아 적은 종이를 내려다봤다. 경과 관찰. 절차의 문장이었고, 절차 뒤는 안전했다.

반 박자.
응급실의 그날 이후 몸에 밴 멈춤이 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멈춤의 너머로 손이 먼저 나갔다.
같은 상에서 같은 증상 — 그 결론이 셋을 한 병으로 묶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상이 같은 병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칠 년의 응급실이 가르친 문장이었다.
다원은 노트를 폈다. 여름 고둥 항목은 금방 나왔다.
'여름 고둥, 침샘. 어지럼, 저림, 취한 듯. 두어 시간에 온다, 한나절에 간다. 물 먹이고 눕혀라.'
그리고 그 밑, 붉은 줄의 문장.
'고둥이면 다 비슷해 보인다. 그게 함정이다. 어지럼이 셋이면 셋 다 배 태우지 말고, 하나를 골라라.'
하나를 골라라.
다원은 평상으로 갔다. 박씨 할아버지 — 맥 정상, 동공 정상, 취한 사람처럼 어지럽다 했다. 이씨 할머니 — 저림이 입 주변에서 멈춰 있고, 말이 온전했다. 고둥의 경과였다. 노트의 문장 그대로.
김 노인 앞에서 손이 멈췄다.

오른팔이 상보다 먼저 기울고 있었다. 웃어 보시라는 말에 얼굴의 오른쪽이 늦게 따라왔다. 성함을 묻자 혀가 절반만 움직였다.
팔. 얼굴. 말.
"팔. 얼굴. 말. 세 개 중에 두 개가 무너졌어요."
다원은 소리 내어 말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김 어르신은 소라가 아닙니다. 뇌졸중 의심이에요. 지금 뭍에 가야 합니다. 지금요."
"소라 먹고 다 같이 저러는데—"
이장이 말끝을 흐렸다.
"보건소는 뭐래?"
"경과 관찰하래요."
"거봐. 뭍에서도 그러라잖아."
"뭍에서는 세 분을 못 봤어요. 저는 봤고요."

다원은 노트를 들었다. 손이 떨렸고,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근거 말씀드릴게요. 하나는 노트고, 둘은 물때고, 셋은 제 눈입니다."
그녀는 손가락을 꼽았다.
"노트 — 전임 소장님이 여름 고둥을 적어 두셨어요. 두어 시간에 오고 한나절에 가고, 셋이면 하나를 고르라고요. 박씨 어르신하고 이씨 할머니는 그 경과 그대로세요. 물때 — 지금 간조라 무레호는 두 시간 못 뜹니다. 하지만 남수로는 반물에도 어선이 가요. 뭍까지 사십 분. 제 눈 — 김 어르신은 팔과 얼굴과 말이에요. 이건 고둥이 아닙니다. 시간이 약이 아니라 적이에요."
마당의 침묵을 가른 것은 순단이었다.
"배는 내가 부른다. 소장은 사람이나 골라."
그다음은 섬이 움직였다. 선주 하나가 뛰었고, 바다가 키를 잡으러 달렸고, 신고를 받고 온 차유나 순경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폰을 든 손이 이미 기록 중이었다.
"치안센터 차유나입니다. 상황 정리해 주세요 — 짧게요."
"뇌졸중 의심 일 명, 남수로로 어선 후송, 나머지 두 분은 식중독 의심 경과 관찰입니다. 발견 시각 여덟 시 사십 분."
"어선 후송이면 뭍에서 받아 줄 데부터 잡아야 돼요. 인계는 제가 잡을게요. 병원, 해경, 순서대로요."

"부탁드립니다."
"소장님은 여기 계실 거죠? 그럼 배에는 보호자 한 분. 명단 주세요."
다원은 김 노인에게 산소를 물리고 머리를 높였다. 기도를 확인하고, 혈압과 맥을 적고, 마지막 정상 확인 시각을 옆에 큰 글씨로 썼다 — 병원이 제일 먼저 물을 숫자였다. 증상 발견 여덟 시 사십 분, 출항 아홉 시 이 분. 배에는 오르지 않았다 — 마당에 회복 경과를 봐야 할 노인이 둘 남아 있었다. 소장은 섬에 남는 자리였다.
"바다야. 남수로, 사십 분 맞지?"
"바람 자면 삼십오 분요. 회항 조건은 파고 일 점 오 — 넘으면 돌아옵니다."
열아홉의 목소리가 조타수의 것이 되어 있었다.
배는 어둠 속으로 나갔다. 마당의 무전기가 파도 소리 사이로 바다의 교신을 물어 왔다.
"남수로 진입. 파고 일 점 영. 이상 없습니다."
"환자 상태 변화 있으면 바로 불러요."
"보호자분이 손 잡고 계세요. 말씀도 시키고 있고요."
"잘하고 있어요. 그대로."

구 시 사십 분, 무전이 다시 울렸다.
"뭍 도착. 구급차 대기하고 있었어요. 인계 완료."
유나의 목소리가 뒤를 받았다.
"병원 접수 확인했습니다. 골든타임 안이래요."
마당 어디선가 낮은 탄성이 새 나왔다. 다원은 그제야 국그릇 김이 다 식은 것을 알았다.
순단이 새 국그릇을 그녀 앞에 놓았다. 말은 없었다. 다원이 수저를 들자 그제야 한마디가 왔다.
"성혜도 그랬다."
"…뭐를요?"
"배 안 타고 남는 거. 소장은 섬에 남는 자리라고."
순단은 그 말만 하고 설거지 쪽으로 갔다. 다원은 식은 줄도 몰랐던 국을 먹었다. 짰고, 뜨거웠고, 이상하게 목이 메었다.
두 노인은 밤새 노트의 문장대로 나아졌다. 취기 같은 어지럼이 걷히고, 저림이 물러났다. 다원은 두 집을 오가며 경과를 적었고, 서른네 살의 밤이 이렇게 길고 이렇게 가득한 것은 응급실 이후 처음이었다.

새벽에야 진료소 책상에 앉았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유나였다. 손에는 폰, 얼굴에는 밤샘.
"접수 기록 맞춰 보러 왔어요. 발견 여덟 시 사십, 출항 아홉 시 이 분, 인계 아홉 시 사십. 맞죠?"
"맞아요. 초 단위까지는 제 수첩에요."
"소장님."
유나는 폰을 내리고 잠깐 그냥 사람의 얼굴이 됐다.
"그 판단, 문서로 남겨 두세요. 잘된 판단일수록 문서가 필요하더라고요. 제 경험상."
"…그럴게요."
"두 어르신 경과는 아침에 다시 볼게요. 눈 좀 붙이세요."
유나가 가고, 다원은 그 말대로 밤의 판단을 기록으로 옮겼다. 그러고서야 잔치 환자 명단을 정리하다, 지난주에 배달된 검진 통지서 뭉치가 걸려 나왔다. 무료 검진 버스가 두고 간 결과들. 김 노인의 것이 있었다. 후송 기록에 붙일 생각으로 봉투를 열었다.

병력란에서 눈이 멈췄다.
'기왕력: 남망여 무릎(11년), 고혈압…'
남망여 무릎. 노트에만 있는 말이었다.
다원은 천천히 노트를 끌어당겼다. 아침에 본 순단의 항목 — 같은 표기였다. 장소와 부위를 붙여 쓰는, 전임 소장의 약어. 진료소 밖의 문서가, 진료소 안에만 있는 말을, 토씨까지 그대로 쓰고 있었다.
김 노인의 남망여 항목을 찾으려고 페이지를 넘겼다.
넘기던 손이 멈췄다.
남망여 — 라고 시작했을 자리에, 종이가 없었다. 찢겨 있었다. 단면에 보풀이 앉아 있었다. 오래전에 찢긴 자리였다.
창밖이 밝아 오고 있었다. 뱃고동이 울 시간이 오고 있었다. 다원은 통지서와 노트를 나란히 놓고, 서류 모서리를 손톱으로 눌렀다.
병명이 증상보다 먼저 와 있었다.
누가, 이 기록을 읽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