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보다 먼저 도착한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프린터의 열기였다. 7층 폐기전환실의 심문실은 유난히 좁고 밝았다. 천장 형광등은 피곤하게 떨렸고, 벽면 유리 너머로는 출입 통제 램프가 붉게 깜빡였다. 정미라는 손목의 감시표식을 한 번 쓸어보고, 자신 앞에 놓인 서류철을 내려다봤다. 보류 태그, 출고 원장, 그리고 재난사업부 명의의 심문 통지서. 세 장의 종이가 서로 다른 시간에 찍혔지만, 같은 검은 인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심문관은 서류를 밀어 주며 말했다. “정미라 씨. 여기서 끝내면 됩니다. 정현우 건은 내부 검토로 돌리고, 귀하는 현장 협조만 인정받으면 됩니다.”
“협조가 아니라 승인서를 달라는 말이겠죠.” 미라가 종이를 들춰 보며 대답했다. 서명란 옆에는 작은 글씨가 박혀 있었다. 폐기 전환 적정성 확인. 그 아래에 더 작은 글씨가 있었다. 보존 상태 양호 시 예외 없음. 한 장의 종이에 서로 모순되는 두 문장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모순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누가 작성했습니까?”
“정식 절차입니다.”
“정식 절차면 공개 열람에 걸어야죠.” 미라는 보류 태그를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여기 출고 원장 번호가 있습니다. 7층 폐기전환실, 정현우, 이관 담당, 재난사업부. 그런데 제가 본 버전에는 이관 담당이 세 번 바뀌었어요. 마지막 담당자 이름은 지워져 있었고, 그 자리에만 검은 인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심문관의 입술이 잠깐 굳었다. 옆에 서 있던 보안요원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지만, 미라는 먼저 공용 패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공개 기록 요청합니다. 현장 심문은 폐쇄 절차가 아니죠. 증거물 연동으로 열어 주세요.”
“귀하는 열람 차단 상태입니다.”
“그래서 더 필요합니다.” 그녀는 손목의 감시표식을 패널에 가까이 댔다. 검은 선이 한 번 번쩍이며 출력 램프가 켜졌다. 보류 태그와 출고 원장이 공용 화면에 연결되자, 종이 끝에서부터 숫자들이 줄지어 올라갔다. 날짜, 층수, 담당 부서, 임시 이동 사유. 그리고 한 줄, 아주 얇은 한 줄이 마지막에 떠올랐다. 비공개 회수 대상: 정현우. 폐기 전환 조건 충족 시 보존 해제.
미라는 숨을 들이마셨다. “보존 해제?”
심문관은 시선을 피하지 못한 채 말했다. “그때는 오염 확산 우려가 있었습니다.”
“오염이라기엔 기록이 너무 깨끗하네요.” 그녀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세 번째 이관 때부터 표기가 바뀌었습니다. 실종이 아니라 보존 재배치. 그다음은 폐기 전환 임시 검토. 그리고 검은 인장. 오빠를 찾은 게 아니라, 찾지 못하게 만든 거죠.”
공기가 조금씩 무거워졌다. 심문실 안의 카메라가 자동으로 초점을 조정했고, 기록 램프가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공개 기록이 걸린 이상, 그들은 숨길 수 없었다. 미라는 출고 원장 끝자락의 필드를 손끝으로 밀어 올렸다. 거기엔 아주 오래된 보존 코드가 적혀 있었다. 대상 회수 시 즉시 분리 보존. 그 코드 옆에 붙은 작은 사각형 인장이 그녀의 머리를 차갑게 때렸다. 3년 전, 실종 신고를 넣던 날, 길드가 돌려준 의뢰서 뒷면에 남아 있던 바로 그 모양이었다.
“정현우는 실종자가 아니었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누군가의 의뢰서에 적힌 두 번째 목표였어요. 첫 번째는 토벌이었고, 두 번째는 목격자 회수였죠. 그 목격자가 오빠였고.”
심문관이 낮게 물었다. “그걸 어디서 봤습니까?”
“감정사라서요.” 그녀는 보류 태그를 들어 보였다. “종이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 찍힌 순서가 사람보다 정확하죠.”
그 순간, 뒤쪽 보존구역 문에서 짧은 경보음이 났다. 심문관이 눈을 감았다 뜨는 동안, 재난사업부 서기가 급히 화면을 조작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공개 기록은 한 번 연동되면 되돌릴 수 없었다. 보존구역의 잠금이 풀리고, 안쪽 조명 하나가 천천히 켜졌다. 차가운 유리 너머로 침상 하나가 드러났다. 얇은 회복 담요 아래, 팔목에 보존 밴드를 단 사람이 누워 있었다. 얼굴을 가린 산소 마스크가 천천히 들썩였다.
미라는 더는 서 있지 못하고 문 앞까지 걸어갔다. 유리에는 그녀의 숨결이 뿌옇게 번졌다. 안쪽의 남자가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마치 오래전부터 누군가를 기다려 온 사람처럼. 눈꺼풀이 떨리고, 잠깐 열린 시선이 그녀를 붙잡았다.
“미라.” 쉰 목소리가 유리 너머에서 새어 나왔다.
그 한마디에 심문실의 소음이 모두 멀어졌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유리를 짚었다. “늦었네.”
정현우는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아니. 아직 남아 있었네.”
그는 완전히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이름이 들어왔고, 실종의 칸은 보존자의 칸으로 바뀌고 있었다. 화면 위의 상태값이 깜빡이다가 정정되었다. 폐기 전환 중지. 보존 전환 유지. 공개 기록 반영. 재난사업부는 동시에 침묵했다. 이 한 번의 정정이 그들에게는 항복과 같았다.
심문관은 마지막으로 미라에게 서명란을 밀어 주었다. “보존 전환 동의서입니다. 폐기 승인란은 취소되었습니다. 대신 귀하는 이 건의 외부 공개를 주도한 책임으로 자격 정지 조치가 내려질 수 있습니다.”
미라는 펜을 들고 잠시 멈췄다. 바로 옆 칸에는 면회 허가와 공개 재심 일정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보존 전환 동의서에만 서명했다. 폐기 승인란은 비워 둔 채였다. 그 순간 감시표식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검은 빛을 뿜었다. 화면에는 짧은 문구가 떴다. F급 감정사 자격 임시 정지. 공적 열람망 제한. 보안 재검토 대기.
“받겠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오빠를 지우는 것보다 싸게 치르는 값이니까요.”
심문관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공용 프린터가 다시 한 장을 뽑아냈다. 정정 공문. 정현우, 실종 목록에서 보존자 명단으로 이동. 폐기 전환 취소. 공개 재심은 30일 뒤. 그 아래에 작은 추가 문장이 있었다. 면회 가능, 주 1회. 그녀는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손끝이 떨렸지만, 이번에는 분노가 아니라 오래 묵은 감각이 돌아오는 떨림이었다.
보존실 밖 복도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러나 더 이상 비어 있지 않았다. 미라는 유리문 앞에서 한 번 뒤돌아보았다. 정현우는 아직 침상에 기대어 있었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접어 넣은 문서의 각도까지 보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머지는 기록이 따라잡을 일이었다.
프린터에서 나온 마지막 통지서의 끝줄에는, 그녀가 끝내 되찾은 미래가 조용히 적혀 있었다. 정현우 보존자 공개 재심, 30일 뒤. 그 날짜가 오기 전까지 그녀는 자격이 멈춘 감정사로 남겠지만, 적어도 오늘부터는 이름이 사라지지 않았다. 검은 인장은 더 이상 실종의 표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숨겨진 목표를 강제했던 손의 흔적이었고, 이제는 공개 기록 위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증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