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 전환실의 공기는 젖은 돌보다도 무거웠다. 상단 수문이 역방향으로 내려오는 소리가 천장 안쪽에서 한 칸씩 울릴 때마다, 바닥의 물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진의 램프는 손바닥만 한 불꽃으로 깜빡이며 세 번, 두 번을 반복했다. 멈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응답받는 모양이었다.
해준은 수압계의 붉은 눈금을 보고 짧게 숨을 들이켰다. 아직 완전히 닫힌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을 더 주면 안 되는 상태라는 건 분명했다. 그는 벽 뒤 배수 홈에 귀를 대고 다시 들렸다. 세 번, 두 번. 이번에는 벽 너머가 아니라 아래쪽이었다. 소리가 아니라 진동에 가까웠다. 누가 손잡이를 두드리는 게 아니었다. 브레이크 축이 헐겁게 버티며 내는 박자였다.
"아래에 더 있어요." 해준이 말했다.
고륜이 즉시 고개를 들었다. "이제 그만해. 사람은 이미 올라왔다."
"올라온 건 두 명이고, 아직 못 올라온 건 적어도 하나입니다."
"그건 확인도 안 된 소리야."
해준은 고륜을 보지 않은 채 문예지에게 말했다. "부상자 맡아 주세요. 젖으면 기록은 다 죽습니다."
문예지는 품에 안은 철판 조각을 더 깊이 끌어안았다. "당신은요?"
"아래를 보고 오죠."
"혼자 내려가면 돌아오는 길이 사라질 텐데요."
해준은 승낙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가방에서 남아 있던 방수 지도 조각을 꺼냈다. 이미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했고, 한 번만 더 접으면 찢어질 정도로 얇았다. 그는 그 조각을 길게 찢었다. 한 가닥은 바닥의 금속 난간에 묶어 현재 위치의 표식으로 남겼고, 다른 한 가닥은 도진의 손목에 감아 맥박이 끊기면 바로 알 수 있도록 묶었다. 마지막 한 가닥은 자기 손에 남겼다가, 잠깐 망설인 뒤 또 찢어 버렸다. 젖은 천이 아니라 방향이었고, 방향은 이제 버릴 수밖에 없었다.
고륜이 그걸 보고 낮게 말했다. "그 지도, 이제 끝났군."
"끝난 건 당신이 숨긴 쪽일지도 모르죠."
해준은 더 묻지 않았다. 고륜의 얼굴이 한순간 굳은 걸 보면, 이미 충분했다.
배수 홈은 사람 한 명이 겨우 기어갈 만큼 좁았다. 해준은 먼저 몸을 낮춰 들어가고, 뒤로 도진과 문예지가 번갈아 따라오게 했다. 고륜은 끝까지 남아서 상부 밸브를 붙들라고 했다. 그가 손을 떼면 수문이 더 빨리 내려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명령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경고였다. 고륜이 저기서 손을 떼면, 그는 더 이상 단순한 대장이 아니게 된다.
통로는 오래된 윤활유와 녹 냄새가 섞여 숨이 막힐 듯했다. 벽면의 쇠못들은 손가락 끝에 닿을 때마다 차갑고 미끄러웠다. 해준은 물기 어린 바닥에 남은 흔적을 읽었다. 최근의 장화 자국 하나, 오래된 둥근 바퀴 자국 둘, 그리고 얇게 긁힌 금속선. 바퀴가 지나는 길이었다. 살아 있는 광차가 이 아래를 지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신호가 장치에서 나는 게 맞네요." 도진이 뒤에서 말했다. "사람이 두드리는 소리면 이렇게 일정할 수가 없어요."
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있는 사람이 맞으면, 더 빨리 찾아야죠."
통로는 갑자기 넓어졌다. 작은 제동실이었다. 천장에는 녹슨 도르래가 매달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반쯤 물에 잠긴 광차 하나가 삐걱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광차 안쪽에서 희미한 불이 새고 있었다. 세 번, 두 번. 세 번, 두 번. 램프는 그 박자에 맞춰 흔들리고 있었다.
광차 아래 바닥에는 젖은 외투 하나가 널려 있었고, 외투의 안주머니가 뒤집혀 있었다. 해준이 다가가 외투를 들어 올리자,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고륜의 젖은 외투였다. 아니, 고륜이 여기까지 내려온 적이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얇은 황동 열쇠 하나가 떨어졌다. 손에 쥐면 식은땀이 묻을 만큼 오래 숨겨 둔 열쇠였다.
"이건..." 문예지가 한 걸음 물러섰다.
고륜이 뒤따라 내려오다가 그 열쇠를 보고 얼굴을 잃었다. "그건 아니야."
해준이 물었다. "그럼 뭐가 맞습니까."
고륜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잠깐 뒤, 광차 안에서 사람이 기침했다. 아주 마른 소리였다. 살아 있다. 해준은 망설이지 않고 광차 옆 잠금쇠에 손을 넣었다. 열쇠가 맞물렸다. 딱, 하고 가볍게 돌아갔다. 고륜의 숨이 멎는 소리가 들렸다.
광차 문이 반쯤 열리자, 안에는 스무 살 남짓한 청년 광부가 웅크리고 있었다. 손목에는 끈이 묶여 있었고, 품에는 젖은 장부가 끼워져 있었다. 그는 눈을 깜빡이다가 해준을 보며 거칠게 웃었다.
"늦었...네요."
"살아 있으면 늦은 게 아닙니다."
해준이 손목끈을 풀었다.
청년은 숨을 몰아쉬며 장부를 건넸다. 표지엔 3갱 폐쇄 도장이 찍혀 있었고, 내부에는 환기선 교대 기록과 함께 누군가의 수기 메모가 남아 있었다. 단 한 줄이었다. 외부 봉쇄, 내부 유지, 제동 역순 적용. 그 아래에는 고륜의 서명과는 다른 글씨가 두 번 덧씌워져 있었다. 봉쇄가 사고가 아니라 계획이었음이 분명했다.
문예지가 장부를 펼치다 손을 떨었다. "이건..."
"말하면 안 됩니다." 청년이 겨우 웃었다. "위에 남은 사람들까지 닫히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제동실 천장에서 굵은 쇳소리가 한 번 울렸다. 상단 수문이 또 한 칸 내려온 것이다. 물이 광차 바퀴 축까지 차올랐고, 도르래 축이 덜컹이며 비틀렸다. 청년 광부가 얼굴빛을 바꿨다.
"안 돼요. 지금 브레이크를 빼면 위가 닫혀요."
"브레이크를 안 빼면 여기서 못 나갑니다." 문예지가 말했다.
청년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 둘 중 하나였어요. 한 명은 남아야 했거든요."
그제야 해준은 이해했다. 이 광차는 단순한 운반용이 아니었다. 아래쪽 신호를 살리기 위해, 혹은 숨기기 위해, 누군가 브레이크를 잠가 둔 채로 사람을 가둬 놓은 것이다. 그리고 열쇠를 가진 사람은 고륜이었다.
해준은 고륜을 돌아봤다. "당신이 숨긴 건 열쇠만이 아니군요."
고륜이 한 발 물러섰다. "여기까지 올 생각은 없었다."
"그럼 왜 가져왔습니까."
대답 대신, 고륜의 젖은 외투가 천천히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아까 전까지는 분명 주머니 속에 있던 다른 황동 장치 하나가, 외투가 젖어 무거워지며 바깥으로 떨어졌다. 실종됐던 광차 제동 열쇠의 본체였다. 고륜은 그것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해준이 먼저 발로 눌렀다.
"이게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고륜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사라진 게 아니야. 여기서 멈춰야 했어."
"사람까지요?"
고륜의 대답은 없었다. 그 침묵만으로 충분했다.
해준은 장부를 문예지에게 넘겼다. "젖지 않게 품으세요. 이것만은 위로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청년 광부에게 말했다. "일어설 수 있습니까."
청년은 바닥을 짚고 일어섰지만 한쪽 다리를 제대로 못 썼다. 해준은 망설임 없이 자기 허리끈을 풀어 그 다리 아래에 감았다. 남은 지지대 대신 쓸 생각이었다. 그 순간 손아귀가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남겨 둔 마지막 묶음도, 지도도, 안전한 방향도 이제 거의 없었다.
위에서는 다시 쇳소리가 났다. 더 가까웠다. 상단 수문이 마지막 눈금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제동실 안 공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눌렸다. 광차 안의 램프가 한 번 꺼졌다 다시 켜지며 세 번, 두 번을 반복했다. 청년 광부는 그 박자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건... 아래 차예요. 아직 하나 더 있습니다."
해준이 물었다. "어디죠."
청년은 광차 바닥 아래, 잠긴 제동축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키를 꽂은 채로만 열 수 있어요. 빼면 저 아래 차가 같이 잠겨요."
해준은 고륜을, 문예지를,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한 번씩 보았다. 지금 당장 열쇠를 빼야 위로 갈 수 있지만, 그걸 빼는 순간 아래쪽 광차는 영영 닫힌다. 반대로 열쇠를 꽂아 두면 광차는 열리지만, 남는 손이 부족해진다. 누군가는 브레이크를 붙든 채 남아야 했다.
천장에서는 수문이 금속을 긁는 소리가 길게 내려앉고 있었다. 해준은 아주 짧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누가 남을지 정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