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네 시 오십구 분, 프런트의 공기는 얇은 종이처럼 말라 있었다. 인쇄기 안쪽에서 돌아가는 롤러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와 겹쳤다. 배선오는 체크인서의 동반 이름란을 내려다보며 숨을 삼켰다. 공란은 단순히 비어 있는 칸이 아니었다. 비어 있다는 사실을 오래 유지할 수 없는 칸이었다. 그 안쪽이 아주 옅게 빛났고, 마치 누군가가 이미 거기에 손끝을 걸어 둔 것처럼 떨고 있었다.
한예지가 프런트 모서리에 등을 기대고 말했다. 「그 칸은 비워두면 안 돼요. 호텔은 빈자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비어 있으면 먼저 본 사람 이름을 넣어요. 아니면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 이름을 넣겠죠.」
배선오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물었다. 「그럼 네 이름을 넣으면?」
「그러면 저는 여기 남아요. 체크인된 이름은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아요.」
「그건 안 돼.」
한예지의 눈빛이 흔들렸다. 「당신 이름을 넣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어요. 이미 호텔이 당신을 읽고 있어요.」
배선오는 손바닥을 펼쳤다. 실명을 되찾을 때 생긴 화상 자국이 붉은 실처럼 손금 위를 가르고 있었다. 그 자국은 아프기보다 뜨거웠고, 뜨겁기보다 고집스러웠다. 이름을 돌려받은 뒤부터 그는 그 자국이 단지 상처가 아니라, 호텔이 자기 사람을 표시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됐다. 표시된 사람은 사라지기 어렵고, 표시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신해 빠져나갈 수 없었다.
프런트 뒤편에서 발소리가 또 한 번 울렸다. 이번에는 분명했다. 사람이 걷는 소리가 아니었다. 발끝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한 박자씩 늦게 밀려오는 소리였다. 호텔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어떤 존재를 미리 걷게 만드는 소리. 공란이 그 존재를 부르고 있었다.
배선오는 체크인서 가장 아래쪽, 동반 이름란 옆에 놓인 작은 장부를 끌어당겼다. 한예지가 급히 손을 뻗었다. 「정말로 적을 생각이에요?」
「적어야 끝나.」
「누구 이름을요.」
배선오는 잠깐 멈췄다. 이름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가두는 문이었다. 그는 이미 그것을 두 번이나 봤다. 하나는 잘려 나갔고, 하나는 겨우 돌아왔다. 타인의 이름을 빌리면 또 다른 사람을 끌고 들어가게 된다. 그건 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덫을 옮기는 일이었다.
그는 펜을 들고 천천히 말했다. 「내 이름.」
한예지가 숨을 들이켰다. 「그건 복원 비용이 아니라 다시 묶이는 일이에요.」
「알아. 그래도 다른 사람을 넣을 순 없어.」
그는 장부 첫 칸에 배선오를 적었다. 글자를 다 쓰는 순간, 손끝이 싸늘해졌다. 잉크가 종이 위에서 마르지 않고 먼저 피부 쪽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은 이미 장부에 한 번 있었다. 이번에는 그보다 더 깊은 자리에 들어갔다. 장부가 얇게 떨리더니, 프런트 아래쪽에서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인쇄기가 갑자기 크게 돌아갔다. 롤러가 빠르게 종이를 물고 끌어올리며 새 카드를 내뱉었다. 카드 앞면에는 방 번호도, 경고 문구도 없었다. 단 한 줄만 박혀 있었다. 배선오는 호텔을 떠나지 않는다. 글자는 새 잉크로 찍힌 듯 검고 단단했다. 그 아래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추가 문장이 붙었다. 출입은 내부 이동으로만 인정된다.
배선오는 카드를 집어 들었다. 종이는 따뜻했다. 아니, 종이라기보다 막 만들어진 규칙의 온기였다. 한예지가 카드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봤죠. 이름을 넣는 순간 카드를 새로 찍어요. 카드가 아니라 사람을 고정하네요.」
그는 카드 뒤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장부와 연결된 듯한 연필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동반 이름 등록 완료. 등록자의 체류 우선권은 호텔 내부에 한정한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복도 끝에서 울리던 발소리가 멈췄다. 공란이 닫혔다는 뜻이었다. 누군가를 끌어들이던 힘이 사라지자 프런트의 공기가 한 칸 가벼워졌다.
하지만 가벼워진 것은 공기뿐이었다. 배선오는 몸이 아주 조금 무거워졌다는 걸 느꼈다. 발바닥이 바닥에 붙는 감각이 달라졌고, 다리 쪽으로 내려가던 힘이 얇은 줄에 묶인 것처럼 실내 깊숙이만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로비 출입문 쪽을 돌아봤다. 유리문 위의 자동 센서가 짧게 반짝이더니, 즉시 꺼졌다. 출입 가능한 사람을 찾는 불빛이 아니라, 내부에 남아야 할 사람을 확인하는 불빛처럼 바뀌었다.
배선오가 문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자, 손목 안쪽이 뜨겁게 당겼다. 카드의 문장이 피부 밑으로 옮겨 붙는 느낌이었다. 그는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이번에는 문틀 위의 작은 안내등이 붉게 변했다. 출입 불가. 한예지가 낮게 말했다. 「나가려고 하면 더 세게 묶일 거예요. 지금은 시험하면 안 돼요.」
「안 나갈 생각이야.」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갈 수 없다는 사실과 나가지 않겠다는 말은 같지 않았다. 호텔은 그 차이를 무심하게 벌려 놓고, 그 틈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 쪽이었다. 배선오는 카드와 장부를 동시에 내려다보았다. 자기 이름이 두 번 찍힌 종이는 더 이상 증명서가 아니라 장치가 되어 있었다. 이름을 돌려받는 데 쓴 대가가, 이제는 그를 안쪽에 세워 두는 못이 된 것이다.
한예지가 프런트 밑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장부에 한 번 더 적힌 게 문제예요. 호텔은 이름을 복원한 게 아니라 고정한 거예요. 아마 문밖으로 나가는 쪽은 이제 없는 사람이 될 거예요.」
배선오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아까까지 멀어지던 발소리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대신 로비 안쪽 어딘가에서 새로운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드 뭉치가 다시 정렬되는 소리였다. 호텔은 방금 생긴 규칙을 다른 서랍에 꽂아 넣고 있었다. 그는 알았다. 지금부터는 문을 여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내부에 묶인 채로 밖의 것들을 읽어낼지, 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로비 출입문은 그의 이름을 걸고 한 번 더 닫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