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다섯 규칙
호텔에는 문이 없었다. 그런데 자정마다 손님이 들어왔다.
배선오는 모로우 호텔 로비의 네 벽을 차례로 확인했다. 엘리베이터 세 대, 막힌 장식창 두 개, 계단으로 내려가는 직원 통로 하나. 바깥으로 난 출입문은 없었다.
체크인 손님은 늘 프런트 맞은편 붉은 카펫 위에 갑자기 서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는 것이 야간 근무의 첫 교육이었다.
신입 직원 강미라가 규칙 카드를 소리 없이 읽었다.
`1. 자정 이후 짐 없이 온 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체크인하지 말 것.`
`2. 종이 두 번 울리면 이름표를 숨길 것.`
`3. 엘리베이터가 바다로 열리면 다음 종까지 눈을 감을 것.`
`4. 0호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5. 거울에 비치지 않는 손님은 황동선을 넘게 하지 말 것.`
"외웠어요."
미라가 속삭였다.
"외워도 카드는 매일 확인하세요. 글자가 바뀔 수 있습니다."
"규칙이 바뀐다고요?"
"문장이 아니라 잉크가요. 어제와 다른 부분이 있으면 먼저 기록합니다."
선오는 카드 오른쪽 아래 날짜를 봤다. 오늘 날짜였다. 2번 규칙만 다른 줄보다 먹이 진했다.
로비 시계가 자정을 쳤다.
붉은 카펫 위에 여자가 나타났다.
회색 원피스, 맨발, 빈 두 손. 규칙 1의 짐이 없었다. 거울에는 카펫만 비치고 여자의 모습은 없었다. 규칙 5에도 걸렸다.
여자는 프런트로 다가오다 바닥의 황동선 앞에서 멈췄다.
"0호실 열쇠를 주세요."
미라가 카드 쪽을 보았다. 선오는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규칙을 손님 앞에서 말하지 말라는 교육은 없었지만, 그는 아직 어떤 문장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예약자 성함을 적어 주시겠습니까?"
선오가 종이와 펜을 황동선 바깥으로 밀었다.
여자는 펜을 거꾸로 잡았다. 글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의 손이었다. 대신 자기 목을 가리켰다가 입술 위에 손가락을 댔다.
말할 수 없는 이름.
그때 로비 종이 두 번 울렸다.
미라는 즉시 이름표를 재킷 안으로 뒤집었다.
선오는 숨기지 않았다.
### 2. 사라지는 글자
종소리가 멎자 직원 장부가 저절로 펼쳐졌다.
미라의 이름에서 `강` 자가 지워졌다.
"선배님. 제 명찰이 이상해요."
미라가 꺼낸 이름표에는 `미라`만 남아 있었다. 성이 있던 자리는 천 자체가 하얗게 비었다.
"2번 규칙이 우리를 보호한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선오는 카드에 손대지 않고 사진부터 찍었다. 어제 카드 기록을 열었다. 어제의 2번은 달랐다.
`종이 한 번 울리면 이름표를 가슴에 보이게 둘 것.`
오늘 카드 누군가가 횟수와 행동을 뒤집었다.
"그럼 저 지금 어떻게 해야 해요?"
"이름을 다시 쓰지 마세요. 잘못된 상태에서 쓰면 호텔이 그걸 새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황동선 밖의 여자는 미라를 보고 자기 목을 가리켰다. 그리고 빈 장부를 가리켰다.
그 여자도 같은 방식으로 이름을 잃은 것 같았다.
미라가 물었다.
"저 손님, 0호실로 보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0호실은 없다고 적혀 있습니다."
선오가 문장을 말하는 순간 로비 바닥이 울렸다.
황동선 안쪽에 있던 검은 열쇠함에서 맨 아래 칸 하나가 사라졌다. 원래 아무 표기도 없던 칸이었다. 선오가 `없다`고 말하자 정말 없는 공간이 된 것이다.
여자는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규칙을 듣지 않으려는 몸짓이었다.
선오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황동 동전 하나를 선 바깥으로 굴렸다. 여자가 동전을 주워 선 안쪽으로 밀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에는 객실 안내 책자를 밀었다. 여자는 그림만 보고 엘리베이터 모양을 짚었다.
선오는 거울을 손으로 가리고 여자를 향해 손짓했다. `한 걸음 와도 되는가?`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발이 황동선을 넘었다.
규칙 5와 달리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라가 소리를 낮췄다.
"규칙이 거짓인가요?"
"아직은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래 거짓이거나, 오늘만 적용되지 않거나, 우리가 읽어 주기 전에는 손님이 규칙 대상이 아니거나."
"마지막 건 왜요?"
선오는 여자가 귀를 막은 행동을 가리켰다.
"이 사람은 글을 읽지 못하고, 내가 0호실 문장을 말했을 때 열쇠함이 바뀌었습니다. 말이 효력을 만들었을 수 있어요."
### 3. 여섯 번째 카드
선오는 프런트 서랍의 나사를 풀었다. 규칙 카드는 매일 안쪽 인쇄기에서 나왔다. 누가 문장을 바꾼다면 출력 경로에 원본이 있을 터였다.
서랍 밑에는 납작한 공간이 있었다. 오래된 카드 한 장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6. 규칙은 직원이 손님에게 읽어 준 순간부터 그 손님에게 적용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손님에게 카드를 보이지 말고, 선택할 수 있는 행동만 그림으로 제시할 것.`
`관리인이 추가한 규칙은 원본 장부의 붉은 인장이 없으면 효력이 없다.`
선오는 오늘 카드 뒷면을 봤다. 붉은 인장이 없었다. 다섯 규칙 모두 관리인이 임의로 출력한 지침일 수 있었다. 다만 직원들이 서로 읽고 믿었기 때문에 직원에게는 이미 작동했다.
미라가 자기 이름표를 가리켰다.
"제 성을 어떻게 돌려놔요?"
원본 카드 뒤에 작은 복원 절차가 있었다.
`지워진 직원 이름은 온전한 이름을 아는 다른 직원이 장부에 대신 쓰고 책임 인장을 찍는다.`
`복원자는 해당 야간의 퇴근 권리를 담보한다.`
선오는 절차를 미라에게 보여 줬다. 이번에는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하면 선배는 못 나갈 수도 있잖아요."
선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신 동의 없이 바로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어요. 다만 성이 더 지워지면 가족 기록과 연결이 끊길 수 있습니다."
미라는 자기 휴대전화 가족 사진을 봤다. 어머니가 보낸 메시지의 수신자 이름도 `미라`로 바뀌고 있었다.
"복원해 주세요. 대신 오늘 밤 같이 남겠습니다."
"담보는 제 퇴근 권리입니다. 당신까지 남을 의무는 없습니다."
"의무 말고 선택이에요."
선오는 직원 장부에 `강미라`를 썼다. 자기 책임 인장을 눌렀다.
미라 이름표의 성이 돌아왔다.
로비 반대편에서 없는 줄 알았던 열쇠함 칸이 다시 나타났다. 선오가 `0호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 만든 효력이, 원본 절차를 실행하며 약해진 것이다.
여자가 손가락으로 0을 그렸다.
선오는 열쇠를 꺼내 카운터 위에 놓았다. 말 대신 0호실 그림과 바깥 화살표를 그렸다. 여자는 두 그림을 보고 스스로 열쇠를 집었다.
엘리베이터 세 대 사이 벽에 가느다란 문이 생겼다.
여자가 문을 열기 전 뒤돌아 미라의 명찰을 가리켰다. 그런 다음 자기 빈 목을 가리키고, 선오의 펜을 빌려 손바닥에 이름을 썼다.
`한예지.`
어제 직원 장부에서 완전히 지워진 야간 직원의 이름이었다.
여자는 손을 흔들고 0호실 문으로 나갔다.
문 너머에는 새벽 거리와 비가 보였다.
### 4. 일곱 번째
한예지가 나간 뒤 0호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미라가 바깥을 내다봤다.
"지금 나가면 선배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선오는 문턱에 발을 올렸다. 신발 끝이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혔다. 직원 장부에 찍은 책임 인장이 손등에서 붉게 빛났다.
퇴근 권리를 담보로 잡혔다.
"저는 안 됩니다. 당신은 나가도 돼요."
미라는 문과 선오를 번갈아 보았다.
"선택이라고 했잖아요. 오늘은 남을게요. 원본 장부 찾고 같이 나가요."
그녀가 문에서 물러나자 0호실은 사라졌다.
프런트 안쪽 인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종이 한 장이 천천히 나왔다.
`야간 직원 규칙 개정.`
`7. 배선오는 모로우 호텔을 떠나지 않는다.`
이번 카드 아래에는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선오는 인장 모양을 사진으로 확대했다. 호텔 지배인 서명인 줄 알았지만 가운데 글자는 사람 이름이었다.
`한예지.`
방금 호텔을 빠져나간, 이름을 잃었던 직원.
로비 전화가 울렸다.
선오가 받자 빗소리 너머로 한예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규칙을 쓴 건 제가 아니에요. 제 이름을 쓰는 사람이 지하 관리실에 있어요. 그 사람이 다음 카드에는 미라 씨 이름을 넣을 겁니다."
전화가 끊겼다.
인쇄기 안에서 여덟 번째 카드가 넘어오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