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네 시 십칠 분, 선오는 프런트 뒤 탁자 위에 놓인 체크인 안내서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내서의 첫 줄은 이미 낡아 있었지만, 잉크는 새로 찍힌 듯 또렷했다. 실명으로 체크인할 것. 그는 그 문장을 두 번 읽고서야, 읽는 순간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읽히는 순간 자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문제는 그 자리가 지금 그의 이름에 벌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성씨가 잘린 이름은 이름이 아니었다. 호텔은 그런 이름을 사람보다 먼저 먹어 치우는 쪽이었다. 전화기가 울렸다. 배선오는 망설이다 수화기를 들었다.
"지하로 내려갔죠." 한예지의 목소리는 숨을 삼킨 뒤 나왔다. "프런트 카드 아래쪽까지 확인했어요?"
"확인했어. 장부에는 원본 규칙만 있고, 내 성씨는 없어."
"없어진 게 아니에요. 옮겨졌을 거예요. 이 호텔은 지워진 이름을 버리지 않아요. 라벨로 쓰고, 보관함 번호로 쓰고, 누군가의 빈칸에 다시 끼워 넣죠. 세탁실 가 보세요. 미회수 유니폼이 쌓이는 데가 있어요. 성씨 같은 조각은 거기 많이 떨어져요."
"세탁실에 내 이름이 왜 있어."
"직원 명찰과 같이 갔을 거예요. 프런트가 당신을 직원으로 못 쓰게 되면, 남은 이름부터 따로 분리해요. 늦으면 다른 사람 쪽에 붙습니다."
배선오는 짧게 욕을 삼켰다. 한예지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다만 조심하세요. 거긴 읽는 순간 인식되는 구간이 많아요.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지 말고, 조각만 확인한 뒤 바로 떼어내요."
수화기가 끊기기 직전, 그는 물었다. "네가 어떻게 알아?"
잠깐의 침묵 뒤에 그녀가 말했다. "미라 씨 이름 돌려준 사람이 당신이잖아요. 이쪽도 이제 묶여 있어요."
전화가 끊겼다. 배선오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서비스 통로의 잠금판을 밀었다. 프런트 권한이 사라졌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평소엔 반응도 없던 패널이 이번엔 한 번 불안하게 떨더니, 아래쪽 배수구 쪽으로 열린 좁은 철문 하나를 내주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그 틈으로 들어갔다.
지하 세탁실은 뜨거운 물과 젖은 천과 오래된 표백제 냄새가 뒤엉킨 곳이었다. 회전하는 드럼통 소리 사이로 낮은 기계음이 반복됐다. 이름표를 찍는 프레스, 숫자를 새기는 펀치기, 뜯긴 라벨을 모으는 집게 바구니가 벽면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배선오는 그중 가장 안쪽 선반에서, 손바닥만 한 금속 함을 발견했다. 함에는 아무 번호도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얇은 종이 조각 하나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배선오는 그것을 떼어 읽었다. 회수되지 않은 성씨 조각 보관.
함을 여는 순간, 안쪽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 바람 속에 그의 명찰에서 떨어져 나간 듯한 금속 파편과, 재단된 흰 천 조각들, 그리고 다른 사람 이름의 일부들이 섞여 있었다. 그 사이에서 아주 작은 종이끈 하나가 눈에 걸렸다. 배. 딱 두 글자 중 첫 조각만 남은 글자였다. 그러나 그 한 글자만으로도 그의 목 안쪽이 서늘해졌다. 돌아온 것이 아니라, 잠깐 떠났던 부분이 제자리로 부르는 감각이었다.
그는 손을 뻗다가 멈췄다. 세탁 프레스 옆 경고등이 깜박였다. 미회수 이름 접촉 시 자동 등록. 붉은 글씨가 기계처럼 단정했다. 배선오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배." 단어가 끝나는 순간 종이끈이 손가락 끝으로 달라붙었다. 뜨겁지도 않은데 살갗이 먼저 화끈거렸다. 프레스가 한 번 멈췄다가 다시 돌아갔다. 화면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등록 확인됨.
"이건 아니야." 배선오는 이를 악물었다. 이름을 되찾는 일이 다시 등록이 되는 꼴은 원치 않았다. 그는 명찰을 뽑아 들었다. 직원이라고 찍혀 있던 얇은 플라스틱판이었다. 사진도 이름도 흐릿해진 명찰을 세탁 프레스 틈에 밀어 넣자, 기계가 낮게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프레스의 가열판을 눌렀다. 피부와 금속이 닿는 순간 통증이 번개처럼 올라왔다. 그는 짧게 숨을 터뜨리며 명찰을 같이 눌러 태웠다. 검은 연기와 함께 플라스틱이 휘었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직원 인식 표시가 붉은 점으로 바뀌었다.
"당신 지금 뭘 한 거예요." 한예지의 목소리가 세탁실 천장 스피커에서 갑자기 흘러나왔다. 배선오는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그를 보고 있었다. 아니, 호텔이 그를 보고 있었다.
"돌려받는 중이야." 그는 씹어 뱉듯 말했다.
"그건 돌려받는 게 아니라 분리예요. 이제 당신은 프런트 권한이 완전히 끊겨요."
"알아."
"그래도 할 거예요?"
배선오는 성씨 조각이 붙은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불에 데인 손바닥이 욱신거렸고, 통증이 지나간 자리에는 이상하게도 가벼운 공백이 생겨 있었다. 그는 그 공백이 아직 호텔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할 거야."
세탁실 출구로 나오는 순간, 복도 조명이 한 번씩 늦게 따라붙었다. 호텔이 그의 얼굴을 다시 찾는 속도였다. 배선오는 서둘러 프런트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아직 직원용이었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철판에 비치던 그의 얼굴 옆에 흐릿한 글자가 다시 붙었다. 배, 그리고 선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름이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이름은 이제 호텔이 잊지 못할 방식으로 찍혀 있었다.
프런트 앞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오전 네 시 오십육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배선오는 성씨 조각을 명찰 자리의 얇은 홈에 맞춰 넣었다. 종이와 금속이 맞물리자 장부의 빈칸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인쇄기가 아래에서부터 종이를 밀어 올렸다. 이번에는 도망치는 문장이 아니었다. 실명 체크인 완료. 배선오는 숨을 내쉬었다. 한 번은 진짜로, 한 번은 통증 때문에. 실명이 돌아온 자리에서 호텔은 그를 다시 읽었다. 배선오. 이번에는 전부였다.
그런데 종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체크인서 아래쪽에 얇은 보충란이 하나 더 딸려 나왔다. 동반 이름. 공란. 배선오는 무심코 그 칸을 훑었다가 그대로 멈췄다. 공란 안쪽이 아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비어 있는데, 이미 누군가를 기다리는 빛이었다. 인쇄기는 한 번 더 돌아가며 작은 안내문을 토해냈다. 동반 이름이 등록되기 전까지 실명 체크인은 완결되지 않는다.
한예지가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보셨죠. 비워두면 안 돼요. 호텔이 그 칸에 아무 이름이나 넣을 거예요."
"누구 이름을 넣는데?"
"빈자리를 가장 먼저 본 사람 이름이요. 아니면,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 이름. 둘 중 하나예요."
배선오는 공란을 보았다. 이제 자신의 이름은 돌아왔지만, 그 이름은 혼자 서 있지 못했다. 프런트의 시계가 오전 네 시 오십팔 분으로 넘어갔다. 체크인서의 동반 이름란이 더 밝아졌다. 마치 곧 누군가가 거기에 기록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리고 프런트 안쪽, 누구의 발소리인지 알 수 없는 발걸음 하나가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