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사십구 분, 신도윤은 외부 보관소 이관대기실의 형광등 아래에서 첫 번째 카트를 멈춰 세웠다. 카트 맨 위의 회색 봉인띠에는 사건 번호가 세 줄로 찍혀 있었는데, 맨 앞 번호만 유난히 진했다. 그 번호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낯설었다. 자신의 아버지 사건 번호였다. 도윤은 손을 대지 않은 채 봉인띠의 가장자리만 바라봤다. 종이는 멀쩡해 보였지만, 인쇄된 글자 사이사이가 이상하게 비어 있었다. 사건명 앞의 한 줄은 흐릿했고, 인수인 서명란은 처음부터 빈칸처럼 남아 있었다.
"이건 왜 아직 안 나갔습니까."
보관 담당자가 어깨를 움찔했다. "전송 목록이 다시 밀렸습니다. 출력은 됐는데, 마지막 줄이 날아갔어요."
"날아간 게 아닙니다."
도윤은 인수대장을 집어 들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압흔이 선명했다. 잉크는 사라졌어도 누가 언제 서명 칸을 눌렀는지는 종이에 남아 있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그 부분을 다시 쓸어보았다. "여기는 비워진 게 아니라, 눌린 뒤에 덮였습니다."
담당자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봉인한 원본이 오늘 아침엔 두 줄이 빠져 있었어요."
도윤은 그 말에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같은 방식이었다. 사건 기록에서 한 줄이 빠지고, 보전명령에서 한 줄이 빠지고, 이제는 인수 확인서까지 한 줄씩 비고 있었다. 기계가 삭제하는 게 아니라, 절차가 스스로 문장을 삼키고 있었다. 그는 카트 옆으로 몸을 돌려 프린터실 쪽을 보았다. 유지보수 창이 열려 있었고, 안쪽에는 아직 식지 않은 토너 냄새가 떠돌았다.
"출력한 사람 누구죠."
"야간 교대 기사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접근이 안 됩니다.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어제부터 내부 열람은 제한된 상태라서요."
도윤은 짧게 웃었다. "아는 쪽이 더 문제군요."
그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배지 번호를 이의제기 양식에 적었다. 아버지 사건을 직접 지목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게 된다. 가족 이해관계자가 되어 내부 접근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서명 칸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순간, 기록실 직원 몇 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신 변호사님, 그건..."
"내가 이 사건의 열람 제한 대상이 되는 건 압니다. 그래도 지금부터는 제 이름으로 묶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버지 사건이 아니라, 47개 사건 전체가 동시에 넘어갑니다."
그는 이의제기 사유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인수대장과 원본 봉인번호 간 압흔 불일치'. 그리고 프린터실 쪽으로 걸어가 유지보수 대장과 출력물을 함께 요구했다. 야간 기사 대신 나온 관리인은 처음엔 버티다가, 도윤이 봉인띠를 들어올려 반대편 압흔을 보여주자 어깨를 늘어뜨렸다.
"여기 보십시오."
도윤은 프린터 용지 뒷면을 조명 아래에 대었다. 희미한 탄화 자국이 줄지어 있었다. 한 줄씩 비워진 자리마다 롤러의 눌린 자국이 같은 깊이로 남아 있었다. 그는 손톱 끝으로 그 자국 위를 긁었다. 검은 가루가 묻어 나왔다. "문장이 빠진 게 아닙니다. 같은 높이에서 같은 자리가 물리적으로 눌려 나갔습니다. 프린터 헤드가 한 줄을 건너뛰는군요."
관리인이 한숨을 삼켰다. "그 장비, 원래는 서류 정리용입니다. 자동 정리대랑 연결돼 있어요."
"그럼 이유는 하나네요."
도윤은 유지보수 로그를 펼쳤다. 교체 부품 번호, 롤러 교정 시간, 야간 재출력 횟수가 같은 숫자 묶음으로 반복돼 있었다. 특히 47건이 모일 때마다 한 줄이 사라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마지막 항목을 두드렸다. "47개 묶음만 지운 게 아니라, 47개가 들어오면 같은 줄을 지우도록 맞춰놓은 겁니다. 이건 오류가 아니라 습관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기록실 복도 끝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야간 당직 재판부 서기가 서류철을 안고 뛰어왔다. 도윤이 이미 제출한 이의제기서가 접수된 모양이었다. 서기는 도윤과 카트를 번갈아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방금 들어온 회신입니다. 첫 번째 카트는 분리 봉인합니다. 외부 보관소 반출은 멈추고, 인수대장 원본과 전송 로그를 같이 두세요."
담당자가 놀라서 물었다. "전부가 아니라 첫 번째만요?"
서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빈칸이 같은 방식으로 생기는 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더 건드리면 다른 카트까지 흔들립니다. 우선 첫 번째 사건부터 별도 봉인합니다."
도윤은 그제야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아버지 사건이 실린 첫 번째 카트는 플라스틱 결박으로 다시 묶였고, 봉인 스티커 위에 붉은 도장이 하나 더 찍혔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다. 곁에 있던 기록 담당자는 낮게 중얼거렸다. "살렸네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살린 것이 아니라 잠시 붙잡아 둔 것뿐이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서류를 넘겨받아 확인하는 순간, 이미 비용이 계산되고 있었다. 서기는 그의 배지 앞면을 오래 보더니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이의제기자 신도윤. 지금부터 내부 열람 정지입니다. 아버지 사건에 대한 추가 접촉도 금지됩니다. 기록실 출입은 별도 승인이 있을 때까지 막겠습니다."
도윤은 배지를 내려다보고 천천히 목에 걸린 끈을 풀었다. "알겠습니다."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서기는 전송대 앞에 놓인 새 인수표를 가리켰다. "미서명 자료용 예비표입니다. 자동 전송 시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섯 시 십 분. 그때까지 서명이 비면 시스템이 대체 인수인을 찾습니다."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예비표의 첫 칸에는 여전히 아버지 사건 번호가 찍혀 있었다. 그 아래 수신인 서명란은 깨끗할 정도로 비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 아무것도 아닌 칸이었는데, 형광등이 흔들리자 거기서 또 한 줄이 빠져나간 듯 보였다. 서기 뒤편의 시계 초침이 짧게 튀었다. 다섯 시 십 분까지 남은 시간은 열여덟 분. 그 안에 누가 그 빈칸을 채우지 못하면, 아버지 사건은 첫 번째 카트에서 풀려나 다시 외부 보관소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빈칸을 채울 수 있는 사람 이름이, 이미 다른 서류 어딘가에서 지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