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다섯 시
새벽 다섯 시가 되자 증거에서 한 문장이 빠졌다.
신도윤은 법원 열람실 벽시계가 4시 59분에서 5시로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형광등이 한 번 깜박였다. 책상 위 진술서 둘째 장이 바람도 없는데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문장은 그때 사라졌다.
4시 58분까지 경비원 최상구의 진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혜인은 연기가 나기 약 십 분 전 창고 정문으로 퇴근했다.`
5시가 되자 앞뒤 문장이 붙었다.
`이혜인은 창고 정문으로 퇴근했다.`
`그 후 서쪽 창에서 불빛을 보았다.`
시간이 빠졌다. 피고인이 화재 전에 떠났다는 핵심이었다.
도윤은 휴대전화 사진을 열었다. 4시 51분에 찍은 진술서 사진에서도 같은 줄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수첩을 펼치자 자신이 베껴 쓴 문장 중 `연기가 나기 약 십 분 전` 부분만 종이색으로 변해 있었다.
기억은 남았다.
그는 즉시 화면 녹화를 켜고 파일 해시, 열람 시각, 기록 번호를 읽었다.
"사건 26-새벽-1842, 피고인 이혜인. 5시 정각 전후로 목격 진술 한 줄이 모든 열람본에서 소실됨.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물성 확인을 시작한다."
진술서 종이를 비스듬히 세우자 빈 줄에 눌린 자국이 보였다. 글자는 사라졌지만 펜 압력은 남아 있었다.
도윤은 종이를 문지르지 않았다. 변호인이 직접 가루를 올리면 증거 훼손 시비가 생긴다. 보존 봉투에 넣고 열람실 직원에게 봉인을 요청했다.
직원은 곤란한 얼굴을 했다.
"시스템 정리 과정에서 중복 문장이 빠진 것 아닐까요?"
"원본 종이 압흔은 시스템이 만들지 못합니다. 그리고 중복인지 판단한 기록도 필요합니다."
"첫 공판이 아홉 시죠?"
"네. 그래서 본안 전에 증거 보전 심문을 신청합니다."
검찰이 주장한 사건은 단순했다. 물류창고 회계 직원 이혜인이 횡령을 들킬까 두려워 창고에 불을 질렀다. 현장 자백, 라이터, 경비원 목격 진술.
사라진 한 줄은 그 단순함에 구멍을 냈다.
### 2. 불리한 진실
구치소 접견실에서 이혜인은 사라진 문장보다 다른 것을 걱정했다.
"채무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검찰 기록에는 개인 채무 없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있습니까?"
혜인은 손가락을 꼬았다.
"사채 8천만 원. 회사 사람은 몰라요. 그게 나오면 제가 돈 때문에 불 질렀다고 할 거잖아요."
"누가 채무를 알고 있었습니까?"
"돈 빌려준 쪽이요. 문자로 창고 장부 한 장만 가져오면 빚을 없애 준다고 했어요. 거절했습니다."
"그 문자를 왜 지금까지 숨겼습니까?"
"불리하니까요. 변호사님도 유리한 것만 말하라면서요."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거짓으로 사건 이론을 세우는 건 다릅니다. 채무 없음이라는 전제 위에서 강요 가능성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혜인이 유리벽에 가까이 왔다.
"채무를 공개하면 구속 취소 못 받죠?"
"검찰은 방화 동기로 쓸 겁니다. 하지만 문자 원본이 있으면 제3자가 창고 기록을 노렸다는 근거도 됩니다. 어느 쪽만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요?"
"선택은 혜인 씨가 합니다. 저는 예상되는 양쪽 결과를 설명합니다. 오늘 보전 심문에서 채무와 문자를 공개하면 기록 변조와 강요를 연결할 수 있습니다. 공개하지 않으면 사라진 문장만 다투고, 검찰이 나중에 채무를 찾으면 우리 신뢰가 더 무너집니다."
혜인은 오래 침묵했다.
"문자 보여 줄게요. 대신 제가 불을 안 질렀다는 말도 믿어 주세요."
"믿는 것과 입증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저는 혜인 씨 말을 출발점으로 삼되 기록과 반대 증거도 확인하겠습니다."
"차갑네요."
"지금은 그게 오래 가는 편입니다."
혜인은 보관 휴대전화의 잠금 해제 동의서에 서명했다.
문자에는 창고 4번 장부를 가져오라는 요구와, 거절하면 `네 자백이 먼저 기록될 것`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발신 시각은 화재 이틀 전이었다.
도윤은 유리한 협박 문장과 불리한 채무 액수를 같은 증거 신청서에 적었다.
### 3. 압흔의 증언
오전 아홉 시, 도윤은 무죄 판결을 요구하지 않았다.
"재판장님, 오늘 신청은 세 가지로 한정합니다. 문제 기록의 본안 사용 정지, 종이 원본과 자동 정리대 로그의 독립 감정, 기록 신뢰성이 확인될 때까지 피고인 구속 취소입니다."
검사는 즉시 반박했다.
"변호인의 기억 외에는 문장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전자 원본과 출력본이 일치합니다. 피고인은 숨긴 사채까지 있어 도주 동기도 큽니다."
"채무는 저희가 함께 공개했습니다. 강요 문자와 분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문장의 잉크는 사라졌지만 필압은 남았습니다."
법원 문서감정인이 봉인 봉투를 열었다. 측면 광원을 비추고 간섭 사진을 촬영하자 빈 줄의 눌린 획이 화면에 떠올랐다.
`연기가 나기 약 십 분 전.`
방청석이 술렁였다.
검사는 말했다.
"압흔만으로 작성 시각과 진위를 알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요구합니다. 압흔이 곧 진실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재 기록이 완전하다는 검찰 전제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도윤은 법원 기록 담당자에게 질문했다.
"이 진술서는 어디서 출력됐습니까?"
"수사기록실 자동 정리대입니다."
"종이 원본도 그 장비를 통과합니까?"
"스캔과 페이지 번호 부여를 위해 한 번 통과합니다."
"장비가 중복 문장을 자동 삭제할 수 있습니까?"
담당자는 망설였다.
"정리 인장이 불필요 표식을 지우는 기능은 있습니다. 낙서나 중복 머리글 같은 것요."
"삭제 전 로그가 남습니까?"
"원래는 남습니다. 이 사건 로그는 새벽 다섯 시 정기 정리 때 비어 있습니다."
"누가 삭제 기준을 설정합니까?"
"장비 납품사와 법원 전산실입니다. 현장 직원은 모릅니다."
증거 연쇄에 외부 장비와 사라진 로그가 들어왔다.
도윤은 경비원 최상구를 불렀다.
"피고인이 화재 전에 떠났다고 말했습니까?"
"그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진술서에는 시간이 없어서 제가 잘못 기억하나 했습니다."
"피고인에게 채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까?"
"아뇨. 다만 화재 전날 낯선 사람이 창고 4번 장부를 찾았습니다. 그 말도 진술했는데……."
최상구가 셋째 장을 넘겼다.
그 문장도 없었다.
재판장은 심문을 중단하고 자동 정리대 사용 정지를 명령했다.
### 4. 제한된 승리
결정은 오후에 나왔다.
`자백서와 최상구 진술서의 본안 사용을 독립 감정 완료까지 정지한다.`
`피고인 구속을 취소하고 출석·접촉 금지 조건으로 석방한다.`
`본 결정은 피고인의 무죄 또는 증거 위조를 확정하지 않는다.`
혜인은 법원 계단에서 전자 발찌 대신 출석 안내서를 받았다. 그는 웃다가 곧 울었다.
"이긴 건가요?"
"오늘 요청한 범위에서는요. 방화 혐의는 남아 있고 채무도 공개 기록에 들어갔습니다. 내일부터 협박 발신자와 장부를 조사해야 합니다."
"그래도 집에는 가죠?"
"네. 피해 창고 직원과 연락하면 다시 구속될 수 있으니 조건을 정확히 지키세요."
도윤은 축하 대신 다음 일정과 금지 사항을 적어 줬다. 제한된 승리는 제한을 알아야 유지됐다.
다음 날 새벽 4시 50분, 도윤은 재판장 결정문 원본 앞에 앉았다. 감정인, 기록 담당자, 검사도 입회했다. 이번에는 카메라 세 대와 독립 시계를 설치했다.
5시 정각.
결정문 마지막 장에서 재판장 서명 한 줄이 사라졌다.
잉크는 없어졌고 압흔만 남았다.
자동 정리대는 전날 전원을 끈 뒤 봉인돼 있었다.
기록 담당자가 창백해졌다.
"장비를 껐는데 어떻게……."
도윤은 봉인 인장을 봤다. 붉은 인장 표면에서 아주 작은 글자가 움직였다.
`정리 대상 48 중 1 완료.`
그들은 장비가 아니라 인장 자체를 껐어야 했다.
전산실이 같은 모델을 거친 사건 목록을 가져왔다. 유죄 확정 31건, 진행 중 16건. 총 47건이었다.
각 사건 기록에는 새벽 다섯 시마다 한 줄씩 비는 페이지가 있었다.
목록 맨 위 사건의 피고인 이름을 본 도윤의 손이 멈췄다.
신도윤.
열두 살 때 방화로 죽었다고 들은 자신의 아버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