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가 아니라 생방송 직전의 대기실이 더 숨이 막혔다. 블루시프트는 무대장 뒤 좁은 통로에 서 있었고, 바닥에는 막 갈아 끼운 무광 테이프가 검은 강처럼 이어져 있었다. 유진의 오른발목은 붕대 안에서 열을 품고 있었다. 제작진은 그 붕대를 못 본 척했다. 아니, 본 척할 이유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프로듀서는 마지막 호출표를 들고 와 유진의 가슴 앞에 툭 꽂았다. 무보호 마지막 런,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손글씨로도 한 번 더 적혀 있었다. 유나유진 단독. 유진은 종이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이어폰을 눌렀다. 삭제 트랙의 잡음이 피처럼 얇게 흘렀다. 네가 서는 자리가 아니라 네 이름표가 끊긴다. 목소리는 분명 유진의 것이었다. 하지만 한 박자 느리고, 한 칸 낮았다. 그는 처음으로 그 문장을 공포가 아니라 좌표처럼 들었다.
그는 호출표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무대 옆의 이름표 걸이에 걸린 자기 출입증을 노려보았다. 일반 카드와 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뒤집자 작은 녹색 클립 하나가 달려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냥 색 구분이라고 생각했던 클립이었다. 그런데 클립 옆면에 아주 미세한 금속 홈이 있었다. 유진은 손끝으로 그것을 문질렀다. 삭제 트랙이 다시 속삭였다. 세 번째 마디 끝. 안쪽으로 접어. 그 순간,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네 이름표가 끊긴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었다. 클립이 떨어지면 하네스의 릴리스 핀이 풀리고, 움직이는 판넬 가장자리의 안전고정이 같이 흔들린다. 누군가 유진을 위험 구간으로 보내는 대신, 그의 식별표를 안전장치로 삼아 사고를 만들 수 있게 해 둔 것이다. 그는 숨을 길게 삼켰다. 제작진은 무대를 연기처럼 보이게 만들면서, 가장 먼저 끊길 자리를 사람 이름으로 숨겨 두었다.
로하가 다가와 낮게 물었다. 너 얼굴 색이 왜 그래. 유진은 대답 대신 손바닥으로 바닥의 테이프 선을 따라 그었다. 오늘은 내가 먼저 들어간다. 그리고 네 사람은 내 뒤를 보지 말고, 내 어깨를 기준으로만 움직여. 준호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건 위험하잖아. 유진은 짧게 웃었다. 그래서 말하는 거야. 위험한 곳을 내가 볼 테니, 너희는 무대가 끊어지는 박자를 안 놓치면 돼. 미나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눈으로 그를 봤지만, 태림이 먼저 숨을 고르고 말했다. 직캠 각은.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야 해. 그래야 나중에 못 지운다. 로하는 그제야 유진의 손을 잡았다. 이번엔 혼자서 안 해. 유진은 잡힌 손 위로 자기 손을 얹었다. 이번엔, 같이 내려갈 거야.
무대가 열리자 천장이 한 번 낮게 울렸다. 반원형 판넬이 레일을 타고 움직였고, 조명은 은색 비처럼 쏟아졌다. 오프닝이 시작되자 유진은 약속대로 가장 먼저 위험 구간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는 프로듀서가 짜 둔 정면 경로를 밟지 않았다. 반 박자 먼저 몸을 접어 왼쪽 내측으로 비틀었다. 카메라가 따라오며 시야를 바꾸는 순간, 오른쪽 외곽 판넬이 눈에 띄지 않게 아래로 꺾였다. 아주 짧은 금속음이었다. 관객은 아직 몰랐지만, 유진은 그 소리를 발목으로 먼저 들었다. 이어폰 속 삭제 트랙이 거의 숨소리처럼 말했다. 거기다. 이름표 아래. 그는 손을 뻗어 자기 가슴에 붙은 출입증을 뜯었다. 프로듀서가 외쳤다. 유진, 동선 지켜. 유진은 답하지 않았다. 출입증 뒷면의 단단한 플라스틱 끝을 사고 위험 표시가 붙은 슬롯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바깥으로 밀리던 판넬이 멈췄다. 릴리스가 걸렸다. 그는 그대로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지금 끊긴 건 사람이 아니라 핀이에요. 하네스 고정핀 빠졌습니다. 현장 정지.
조명이 순간 흔들렸다. 스태프 몇 명이 무대로 뛰어오려다 멈췄다. 방송 화면은 흔들렸지만 끊기지 않았다. 오히려 끊기지 못한 채 그 장면을 오래 보여 주었다. 유진은 출입증을 들어 카메라 쪽으로 돌렸다. 뒤편의 녹색 클립이 반쯤 벌어져 있었고, 그 아래 금속 핀 하나가 비틀려 나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손톱으로 밀어 올렸다. 팬 직캠의 화면에도 같은 장면이 잡혔다. 누군가의 손이 클립을 조작하려던 찰나, 유진이 먼저 알아차리고 있었다. 프로듀서가 씩씩대며 통제실 쪽을 향해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관객석에서는 웅성거림이 아니라 뚜렷한 흥분이 퍼졌다. 저거 일부러였어. 방금 멈춘 거 봤어? 방송이 멈출 줄 알았는데, 멈춘 건 무대였다. 사람은 아니었다. 그 차이를 모두가 봤다.
정지된 무대를 다시 돌리는 동안, 블루시프트는 유진의 지시에 따라 낮은 삼각형으로 재배열됐다. 그는 가장 바깥에 서지 않고, 가장 안쪽으로 팀을 밀어 넣었다. 로하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네 발목 괜찮아. 유진은 고개만 저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무너질 수는 없었다. 하네스가 정상으로 교체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마치 처음부터 그런 안무였던 것처럼 다시 호흡을 맞췄다. 곡이 재개되자 판넬은 더 천천히, 더 노골적으로 안전하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아차렸다. 안전장치가 제대로 걸리자 동작은 오히려 더 작고 단단해졌고, 그 작은 정확함이 무대를 훨씬 크게 보이게 했다. 마지막 후렴에서 블루시프트는 한 번도 흩어지지 않은 채 정면을 향해 몸을 열었다. 유진은 센터를 차지하지 않았다. 대신 센터를 지탱했다. 그 사실은 화면보다 직캠에서 더 분명했다.
곡이 끝나자 조용히 심사가 이어졌다. MC는 준비된 멘트를 잃은 목소리로 무대 장치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방금 장치가 아니라 누군가의 숨은 의도가 드러났다는 것을. 블루시프트는 완주 판정을 받았고, 다섯 명 모두 탈락권에서 벗어났다. 개인 점수는 유진에게 불리하게 남았다. 무대 흐름을 끊었다는 명목으로 감점이 붙었고, 제작진은 그를 향해 표정 없는 경고를 던졌다. 그래도 유진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무대 가장자리에서 내려오며 로하가 물었다. 왜 거기까지 했어. 유진은 통증으로 굳은 발목을 잠깐 내려다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너희가 떨어지는 걸 보는 것보다, 내가 미움받는 게 싸니까. 준호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이번엔 네가 우리를 살린 거야. 유진은 처음으로 그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무대 뒤 복도에서 안전요원이 조작된 고정핀과 비틀린 클립을 봉투에 넣었다. 프로듀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웃지 못했다. 그가 유진에게 다가오자, 유진은 먼저 말했다. 편집실이 아무리 빨라도, 직캠은 이미 퍼졌어요. 프로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을 피해 통제실 문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은 처음으로 작아 보였다. 유진은 그제야 발목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어지럼이 올라왔고, 손끝이 차가워졌다. 로하가 바로 팔을 받쳤다. 병원 가자. 유진은 작게 웃었다. 이번에는 도망 안 쳐도 돼. 로하는 대답 대신 그의 어깨를 더 세게 눌렀다. 복도 끝 스크린에는 재생이 멈춘 생방송 화면이 떠 있었고, 그 아래 자막이 조용히 바뀌었다. 장치 이상으로 인한 재점검. 아무리 공손한 문장이라도, 화면 속 직캠과 함께 보면 변명은 되지 못했다. 유진은 그 화면을 한 번 보고, 다시 앞을 봤다. 누군가가 지운 파일 하나가 아직 남아 있을지 몰랐지만, 이제 그 파일은 혼자 숨을 수 없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오늘의 대가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