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검증실은 새벽보다 더 밝았지만, 밝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지는 않았다. 천장 조명은 백색으로 번쩍였고, 바닥에는 길게 이어 붙인 이동형 판넬이 열 개의 구간처럼 늘어서 있었다. 판넬 아래에는 얇은 레일이 숨어 있었고, 레일 끝마다 숫자가 붙어 있었다. 숫자는 멀리서 보면 장식 같았지만, 가까이 가면 사람의 발목을 잡아채는 순서표처럼 보였다. 블루시프트는 무대 가장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다들 말이 없었다. 어젯밤부터 유진이 또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유진이 아니면 누가 막아 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둘 다 얼굴에 떠 있었다.
프로듀서는 계단 위에 서서 팔짱을 꼈다. "이번엔 설명해 줄 생각 없어. 정오 재검증은 단순해. 이동형 무대에서 네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면, 블루시프트 첫 슬롯은 다른 팀으로 간다." 그는 여전히 공손한 말투를 쓰고 있었지만, 말끝은 칼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유나유진. 네가 먼저 들어가. 네 몸이 제일 믿을 만하잖아."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판넬 사이를 훑었다. 어제와 같은 구조인데도 오늘은 이상하게 세로선이 더 길어 보였다. 시선이 한 구간에 걸릴 때마다 귀 안쪽에서 가느다란 잡음이 번졌다. 이어폰 안에서 자기 목소리가, 아니 자기 목소리와 비슷하지만 훨씬 낮고 먼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리는 움직이지 않아. 잠금이 먼저 풀린다. 셋째 판넬, 오른쪽 끝. 사람이 아니라 연결을 봐.
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셋째 판넬 오른쪽 끝, 손대지 마." 팀원들이 동시에 그를 봤다. "왜 또 네가 먼저 알아?" 로하가 낮게 물었다. 불안과 경계가 섞인 목소리였다. 유진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밟아 봐야 해. 안 그러면 누가 끊어지는지 몰라."
준호가 인상을 썼다. "그 말, 믿어도 돼? 지난번처럼 네가 다 끌어안는 거면 싫어." "끌어안는 거 아니야." 유진은 손등으로 발목을 눌렀다. 찌르는 통증이 바로 올라왔지만 표정은 흔들지 않았다. "끊어질 자리를 먼저 보여 주는 거지."
그가 맨 앞에 서자 스태프가 검은 테이프를 새로 붙였다. 표면은 매끈했지만 그 아래에서 금속이 미세하게 울었다. 유진은 그 진동을 느꼈다. 바닥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는 왼발을 먼저 옮기지 않고, 오른손으로 레일 옆 작은 덮개를 눌러 보았다. 딸깍. 아주 얕은 소리였다. 잠금이 겉과 달리 한 박자 늦게 물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삭제 트랙이 다시 속삭였다.
번호를 믿지 마. 세 번째는 장식이고, 네 번째가 진짜 시작이야. 네가 먼저 서면 네 뒤가 비어.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팀에게 손짓했다. "로하, 왼쪽 두 칸. 준호는 내 뒤. 태림은 시야가 넓어야 하니까 뒤쪽 카메라 각을 보면서 따라와. 미나는 내가 손 드는 순간 안쪽으로 접어."
"무슨 군사 훈련이야?" 미나가 작게 타박했다. "아니. 오늘은 무대가 우리를 흔드는지, 우리가 무대를 묶는지 보는 거야."
음악이 시작되자 레일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외형상은 우아한 이동무대였다. 하지만 첫 박자가 지나자 유진은 금세 알아차렸다. 오른쪽 모듈이 예상보다 반 박자 늦게 따라오고 있었다. 관객이 없는 리허설인데도 공기의 밀도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첫 회전에서 일부러 한 박자를 늦췄다. 몸이 아니라 판넬을 기다리는 늦춤이었다. 바로 그 순간, 오른쪽 끝이 툭 하고 내려앉았다. 사람 하나가 설 자리가 아니라, 발끝이 미끄러질 틈이 열린 것이다.
"지금!" 유진이 외쳤다.
로하가 반사적으로 안쪽으로 들어왔고, 준호는 그의 등 뒤를 받쳤다. 태림은 카메라가 잡아야 할 각도를 읽으며 몸을 낮췄고, 미나는 손끝으로 유진의 옷자락을 잡아 동선을 붙였다. 유진은 한 걸음 더 나가며 오른쪽 모듈의 연결부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금속이 차갑게 떨렸다. 아래에서 짧고 둔한 충격음이 났다. 누군가 스태프 쪽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도 들렸다.
그는 무리하게 버티지 않았다. 대신 네 사람의 회전을 한 줄로 바꿨다. 센터를 버리는 대신, 센터를 이동시키는 쪽으로. 유진이 가장 바깥에서 판넬을 떠받치고, 나머지 셋이 안쪽으로 겹치면서 카메라 한 대 안에 모든 동작이 들어왔다. 공식 화면에서는 마치 고난도 동선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알고 있었다. 저건 안무가 아니라 응급조치였다.
두 번째 후렴에서 발목이 날카롭게 비틀렸다. 통증이 무릎까지 올라왔고, 숨이 한번 끊겼다. 그는 이를 악물고 오른팔로 상체를 세웠다. 만약 여기서 무너지면 팀 전체가 판넬 사이로 밀릴 수 있었다. 그는 자기 몸을 징검돌처럼 써서 다음 구간을 넘겼다. 로하가 작게 말했다. "유진아, 네 발..." "보지 마." 그는 짧게 답했다. "앞만 봐."
마지막 회전이 끝날 때, 오른쪽 모듈은 완전히 뒤틀리지 못한 채 멈춰 섰다. 유진이 미리 눌러 둔 잠금 덮개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재검증은 성공이었다. 무대는 끊기지 않았고, 누구도 떨어지지 않았다. 공식 모니터의 붉은 경고등은 켜지지 않았다. 다만 패널 끝에서 스치듯 지나간 흔들림이 있었고, 팬 직캠을 찍고 있던 몇몇 휴대폰이 동시에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카메라에는 유진이 가장 위험한 자리를 먼저 밟고, 마지막에 팀을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장면이 선명하게 남았다.
검증이 끝나자 블루시프트는 모두 숨을 길게 토했다. 로하가 유진의 팔을 붙잡았다. "네가 아니었으면 바로 빠졌어." 준호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까지의 불신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같은 일을 보고 있었다. 무대가 사람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무대를 묶었다는 사실을.
프로듀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주 천천히 박수를 쳤다. 박수는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결정을 내렸다는 소리였다. "좋아. 결함은 확인됐어. 그런데 네가 또 너무 앞에 나갔지." 그는 유진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생방송 본무대는 그대로 간다. 다만 마지막 런에서 넌 하네스를 안 찬다. 정해진 동선은 두 번 검증됐어. 이제 네가 직접 증명해. 블루시프트 첫 슬롯은 유지해 주지. 대신 유나유진, 네가 위험 구간에 서."
유진은 잠시 말을 잃었다. 손바닥에 묻은 금속 가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가루를 문질러 지우며 물었다. "안전 검증은요?" 프로듀서가 대답했다. "네가 방금 끝냈잖아."
그 말과 동시에 이어폰 안에서 삭제 트랙의 목소리가 더 낮게 깔렸다. 거의 숨소리 같았다. 이번엔 무대가 아니라 네 이름표가 끊긴다.
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무대 바깥쪽 벽면에 붙은 출입증 거치대가 보였다. 거기에서 블루시프트 팀 카드 하나가 따로 떼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유진의 개인 출입증이 빨간 클립으로 묶여 있었다. 스태프가 다가와 그것을 확인표처럼 집어 들었다. "유나유진, 마지막 런은 단독 확인으로 바뀝니다. 오프닝까지 삼십 분."
유진은 발목의 통증이 다시 올라오는 걸 느끼며 숨을 삼켰다. 첫 슬롯은 지켰다. 그러나 이제 그 첫 슬롯을 지키는 방식이, 자신이 가장 위험한 자리에 직접 서는 것뿐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