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실의 아래층은 숨을 삼킨 배관 냄새로 가득했다. 한겨울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며 무음 수신기를 손바닥에 눌러 쥐었다. 손끝의 화상은 아직 덜 식은 쇠처럼 욱신거렸고, 살갗은 조금만 힘을 줘도 갈라질 것 같았다. 뒤에서 진우가 낮게 물었다.
"정말 내려가? 저 아래가 경매장 뒤편일 수도 있잖아. 잡히면 끝인데."
겨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잡히기 전에 끝낼 생각이었다. 그는 수신기의 다이얼을 아주 조금만 돌렸다. 그 순간 주변의 기계음이 한 겹 얇아졌다. 환풍기가 내는 떨림, 배관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벽 안쪽에서 울리는 중계선의 미세한 윙윙거림이 순서대로 눌렸다. 소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 층만 세상에서 분리된 것처럼 멀어졌다. 겨울은 그 틈을 이용해 왼쪽 벽을 짚고 좁은 서비스 통로로 몸을 밀어 넣었다. 카메라 렌즈가 돌아가는 각도를 피하는 법은 알고 있었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보는 곳은 늘 규칙적이었다. 규칙적인 것은 손이 가면 쉽게 어긋났다.
진우는 뒤따라오며 숨을 죽였다. "이걸로 정말 우리를 못 봐?"
겨울은 대답 대신 수신기를 들어 보였다. 작은 금속판 안쪽에서 미세한 파형이 떨렸다. 화면이 닿지 않는 60초. 그 문장은 협박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문처럼 보였다. 그는 이 사각을 열어야만 했다. 계단 끝의 철문을 통과하자 공기가 갑자기 따뜻해졌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냄새도 달라졌다. 찬 먼지 사이에 전기 타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경매 릴레이실이었다.
방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 천장과 벽을 따라 얇은 관들이 뻗어 있었고, 가운데에는 손바닥만 한 결제 코어가 떠 있었다. 그 주위를 둘러싼 투명 패널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흘렀다. 성, 나이, 참가권, 담보율, 현재 입찰가. 한겨울의 이름이 거기 있었다. 처음 보는 정식 표기였다. 한겨울. 대답하지 않는 참가자. 옆에는 진우의 이름도 있었다. 담보. 겨울은 숨을 멈춘 채 패널을 읽었다. 항목 아래에는 낯익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죽은 어머니만 알고 있던 그 리듬. 단어 하나하나가 정확히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진우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이 문장, 네가 전에 본 거랑 똑같아?"
겨울은 손가락으로 패널 아래쪽을 짚었다. 추모 암호. 그 밑에 더 작은 글씨가 있었다. 송신자 확인 불가. 원전: 유가족 지정 보관분. 그는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뒷골이 서늘해졌다. 익명 후원자가 보낸 문장은 협박이 아니라 열쇠였다. 누군가 어머니의 보관분에 접근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후원자가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기록을 사고파는 쪽. 겨울은 그 사실을 입안에서 굴리며 결제 코어 앞으로 다가갔다. 그냥 보면 위험했다. 하지만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진우는 끌려간다. 그는 수신기의 끝을 코어 슬롯에 억지로 끼워 넣었다.
기계가 낮게 울었다. 코어가 겨울의 피를 읽듯 빛났다. 겨울은 이를 악물고 왼손을 더 세게 눌렀다. 화상 난 살갗이 뜯겨 나가며 따뜻한 것이 흘렀다. 금속이 피부와 맞닿자 몸 전체가 떨렸다. 방금 전까지 억눌려 있던 시스템의 소리가 한꺼번에 터졌다. 경보가 울릴 줄 알았지만, 수신기가 먼저 반응했다. 무음. 아주 짧고 깊은 무음이 방 전체를 덮었다. 그 틈에 겨울은 결제 코어의 옆면을 비틀었다. 얇은 보호막이 갈라지고 안쪽에서 회색 영수증 조각 같은 데이터가 뿜어 나왔다. 그는 손을 빼지 않았다. 오히려 손목으로 코어를 눌러 뜯었다. 그 순간 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올라왔다.
"겨울아!" 진우가 뛰어들어 그의 어깨를 잡았다.
겨울은 짧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방금 튀어나온 데이터 조각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며 글자를 띄웠다. 담보 재조정 가능. 응답 지연 24시간. 조건 충족: 공개 추적 전환. 겨울은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선택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진우의 즉시 이송을 막으려면, 담보를 새로 묶어야 했다. 더 늦출 수는 있지만, 대가 없이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데이터 조각들을 한데 긁어 모아 수신기 안쪽 홈에 다시 찔러 넣었다. 기계가 다시 떨었다. 이번에는 무음이 아니라 낮은 서명이 흘렀다. 한겨울. 공개 추적 대상자. 겨울은 그 문장을 끝까지 받아들였다. 진우가 끌려가지 않는다면, 표적은 자신이어야 했다.
진우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왜 네 이름을 올려?"
겨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패널 하단을 가리켰다. 새로 열린 항목이었다. 경매 연동 성공. 첫 입찰가 공개 예정. 낭독 조건 등록. 죽은 어머니의 이름을 가진 문장을, 공용 마이크 앞에서 읽어야 입찰이 멈춘다. 한 줄 아래에는 시간도 적혀 있었다. 11시간 42분 19초. 다음 방송 개시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겨울은 그 숫자를 보는 동안 손끝 감각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수신기를 쥔 손은 이미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저려 왔다. 하지만 그는 놓지 않았다. 놓으면 진우가 먼저 사라진다.
그는 철문을 밀고 나오며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릴레이실의 공용 화면이 켜져 있었다. 자신의 얼굴이 정면으로 박혀 있었고, 아래에는 실명과 입찰 번호가 붉게 떠 있었다. 대기 중인 후원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한겨울의 침묵, 최고가 입찰 대상. 화면 맨 아래에 새로운 문장이 한 줄 더 붙었다. 공용 무대에서 낭독할 자만이 담보를 회수할 수 있다. 진우의 이름은 아직 남아 있었다. 살아 있었다. 그러나 다음 방송이 시작되면, 겨울이 입을 열지 않는 한 그 이름은 다시 경매장으로 넘어갈 것이다. 겨울은 깨진 손바닥에서 떨어지는 피를 보며 천천히 수신기를 품속에 넣었다. 이제 답해야 할 것은 문장만이 아니었다. 누가 이 문장을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보냈는지, 그리고 왜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렸는지, 그걸 묻기 위해서는 공용 무대 위로 직접 올라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