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창에 켜진 별은 하나가 아니었다. 한겨울이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는 동안, 별점은 점자로 이어져 짧은 문장을 만들었다. 어머니의 묘비에서 손끝으로 더듬던 배열과 똑같았다. 겨울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다시 내쉬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순간 화면이 반응할지도 몰랐다. 대신 그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피 묻은 손가락으로 물었다. 누구.
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10초가 지나고, 20초가 지났다. 대기실의 공기는 차갑고 얇았다. 진우가 문 쪽을 힐끔거리며 속삭였다.
"진짜로 안 하게? 그냥 한마디만 하면..."
겨울은 고개를 저었다. 한마디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들은 한마디를 사서 목소리, 이름, 가족, 숨는 방식까지 훔친다. 그는 창에 뜬 별점 문장을 다시 읽었다. 방송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답을 준다. 그 순간, 묘비 앞에서 어머니가 항상 하던 습관이 떠올랐다. 비바람이 심할 때 그녀는 늘 한 발 물러서서, 아무도 듣지 못하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소리는 위가 아니라 아래로 숨어야 한다고 말했다.
겨울은 갑자기 일어섰다. "가야 해." 그는 말 대신 손짓으로 진우를 불렀다. 진우의 얼굴이 굳었다. "어디로?" 겨울은 대답하지 않고 벽면의 꺼진 카메라를 향해 손바닥을 들었다. 이미 손바닥은 손상돼 있었다. 유리 회랑에서 렌즈를 떼어낼 때 생긴 화상이 아직 덜 아물었는데, 그 위에 다시 손을 얹으니 피부가 타는 냄새가 났다. 그는 주머니에서 유리 파편 같은 렌즈 나사를 꺼내 카메라 표면을 긁었다. 짧은 경고음이 울리고, 화면 한쪽에 임시 오류가 번졌다. 방송이 잠깐 길을 잃은 틈이었다.
진우가 입을 막았다. "네가 일부러?" 겨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류가 커지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그는 진우의 팔을 잡아 끌며 대기실 반대편, 경계 표식이 희미한 서비스 문으로 달렸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완전히 잠기진 않았다. 겨울은 어머니의 별점 문장을 떠올리며 손가락으로 잠금판의 점들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지막 점을 누르자 문 안쪽에서 낮게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진우가 눈을 크게 떴다.
"너 이거 알아?"
겨울은 짧게 숨을 내뱉었다. 알아야만 했다. 어머니는 늘 경기장 바깥의 일을 알고 있었다. 고장난 회로의 소리, 비공개 통로의 냄새, 그리고 방송이 닿지 않는 곳의 감각까지. 겨울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걸 그녀가 남겼다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비스 문 너머는 좁은 철제 계단이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방송음이 옅어졌다. 처음에는 희미한 삐이 소리가 들렸고, 그다음에는 아예 귀가 먹먹해졌다. 진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속삭였다. "여긴 뭐야?"
"들키지 않는 곳." 겨울이 답했다.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오래 말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오래, 필요한 말만 삼켜 온 사람의 소리였다.
계단 끝에는 오래된 유지실이 있었다. 천장에는 죽은 센서들이 매달려 있었고, 벽에는 수십 개의 케이블이 얽혀 있었다. 가운데에는 녹슨 금속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상자 위에는 점자로 된 짧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겨울은 손끝으로 더듬었다. 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 답이 있다. 그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문장 끝의 움푹 패인 자국이 묘비의 그것과 같았다. 어머니가 남긴 표식이었다.
상자를 열려면 전력이 필요했다. 겨울은 망설이지 않았다. 목에 걸고 있던 얇은 금속판을 뽑아냈다. 어머니가 마지막 생일에 채워 준 유품이었다. 안쪽에는 희미한 온기가 남아 있었고, 표면에는 닳아가는 음각이 있었다. 그는 그걸 두 손으로 구부려 상자의 전력핵 단자에 꽂았다. 순간 금속이 뜨거워지며 손에 들러붙었다. 겨울은 이를 악물고 놓지 않았다. 살갗이 다시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진우가 놀라 다가왔지만, 겨울은 고개를 저어 막았다. 지금 놓으면 문이 닫힌다.
그리고 60초짜리 무음 구간이 열렸다.
정확히는 방송이 꺼진 것이 아니라, 유지실이 방송을 삼켰다. 바깥에서 흘러오던 중계음이 벽에 부딪혀 사라졌고, 세상의 소음이 갑자기 아래로 가라앉았다. 겨울은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손바닥만 한 수신기와 검은 표식이 함께 들어 있었다. 표식의 가장자리에는 닳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무음 수신기. 그 아래 더 작은 글씨가 있었다. 답은 네가 아니라 네가 살린 사람에게서 온다.
"이게 뭐야?" 진우가 물었다.
겨울은 수신기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의 화상에 닿자 온몸이 떨렸다. 수신기의 가장자리에는 아주 작은 파형 조절 다이얼이 있었고, 중앙에는 사람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홈이 있었다. 겨울이 그 홈에 피가 묻은 엄지끝을 대자, 수신기가 가볍게 떨리며 반응했다. 그는 순간 귀 안쪽이 찌르는 듯 아팠다. 어딘가 멀리서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아니, 이름이 아니라 침묵의 모양을 읽는 느낌이었다.
진우가 한 걸음 물러섰다. "겨울아, 뒤에..."
천장 센서 하나가 다시 살아나며 붉은 점을 뿜었다. 경보였다. 겨울은 수신기를 귀 옆에 눌러 붙였다. 그 순간, 경보음이 뚝 끊겼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빨간 점도 흐려졌다. 무음 수신기가 방송의 일부를 먹어 치운 것이다. 겨울은 그 짧은 무음에 몸을 던져 진우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센서 시야의 가장자리로 굴러 들어가듯 지나갔다. 방금 전까지 그 자리에 있던 붉은 빛이 뒤늦게 허공을 훑고,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돌아갔다.
진우는 숨을 몰아쉬며 겨울을 바라봤다. "방금... 우리 지나왔어?"
겨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대답이었다. 그는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화상이 더 깊어져 살이 벌어져 있었고, 어머니의 금속판이 들어 있던 자리에는 검게 탄 자국만 남았다. 돌아갈 수 없는 희생이었다. 하지만 무음 수신기는 살아 있었다. 이제 겨울은 한 번쯤 자신의 행동을 화면 밖으로 숨길 수 있었다. 그 사실은 상처보다 무거웠다. 숨길 수 있다는 건, 누군가 그의 침묵을 계속 사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때 수신기 안쪽이 반짝이며 새 문장을 내보냈다. 공기 중이 아니라 화면 없는 칩 내부에서만 보이는 글씨였다. 경매 시스템 등록 완료. 품목: 한겨울의 침묵. 부가 조건: 60초. 담보: 진우의 참가권.
진우가 그 문장을 읽고 얼굴이 하얘졌다. "나까지?"
겨울은 수신기를 세게 움켜쥐었다. 손바닥 상처가 다시 벌어져 피가 떨어졌다. 다음 줄이 이어졌다. 첫 응답 시각까지 남은 시간 06:47:12. 응답하지 않을 경우, 담보는 공개 경매장으로 이송된다. 대상자: 진우.
겨울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뒤, 수신기를 품에 넣었다. 그리고 계단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물러설 수 없었다. 다음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그는 반드시 누가 자기 침묵을 사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진우가 먼저 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