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열쇠는 밤새도록 차갑게 식지 않았다. 공동 봉인 주머니 안에서 미세하게 돌아갈 때마다, 마치 누군가 안쪽에서 숫자를 세는 것 같았다. 엘린은 촛불 아래에서 그 표식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자잘한 선이 겹쳐진 원 안에 작은 왕관, 그 아래는 장부를 묶는 끈처럼 교차한 두 줄. 왕실 곡물 표찰에도 비슷한 틀이 있었지만, 이 표식은 한 겹 더 깊었다. 공적 창고가 아니라, 공적 창고를 세는 사람의 손끝에만 찍히는 방식이었다.
마라가 어깨를 세운 채 말했다. '이건 창고 열쇠가 아니에요. 회계 문서에 붙는 표식이죠.'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어제까지도 엘린을 보면 이를 악물던 사람인데, 오늘은 그 분노를 숨길 기운도 없어 보였다. '그 말은, 누가 곡물을 빼돌렸는지 아는 쪽으로 더 들어간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엘린은 열쇠를 주먹 안에 쥐었다. '그리고 이미 한 번 옮겨진 돈은, 한 번 더 옮기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공증관이 잠든 눈을 비비며 인장을 챙겼다. '새벽엔 창고 출입이 막혀 있습니다. 정식 영장 없이는 문지기가 문을 열지 않겠죠.'
'영장이라.' 엘린은 잠깐 웃지도 못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건 제가 가진 걸 쓰면 됩니다.'
마라가 바로 눈을 좁혔다. '무슨 뜻이죠?'
엘린은 대답하지 않고, 침대 옆 상자에서 얇은 은색 인장함을 꺼냈다. 로제트 가문이 아직 완전히 버리지 않은 개인 인장이었다. 혼인 동맹과 함께 묶여 있던 마지막 체면이자, 법정에서 그녀를 감싸 주던 사소한 방패였다. 그녀는 그 뚜껑을 열어 인장을 손바닥 위에 올려 두었다.
'이걸 쓰면, 나중에 제가 모른다고 말할 길이 없어집니다.'
'원래부터 없었습니다.' 도윤이 낮게 말했다. '오늘도 없었고, 어제도 없었습니다.'
그 말에는 조롱이 없었다. 대신 오래 눌린 피로가 있었다. 엘린은 그 피로를 정면으로 받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변명하지 않았다.
북쪽 창고는 왕실 연회장과는 다르게 숨을 들이쉴 때마다 먼지 냄새가 났다. 아침 안개가 마당에 엉켜 있었고, 문 앞에는 빈 마차 자국이 겹겹이 패여 있었다. 창고 관리인은 엘린을 보자 얼굴이 굳었지만, 그녀가 공동 봉인 주머니와 이전 반환 문서를 함께 내밀자 입술이 떨렸다.
'여긴 일반 출입이 안 됩니다.'
'일반 출입이 아니라 조사입니다.' 엘린이 말했다. '당신도 묶여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문을 열고 옆으로 물러서십시오.'
관리인은 끝내 문을 열었다. 내부에는 곡물 자루가 층층이 쌓여 있었고, 벽에는 세금 표가 매달려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했다. 지나치게 평범해서 오히려 수상했다. 엘린은 자루 하나를 눌러 보고, 바닥의 못 배열을 세었다. 벽의 분필 자국이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 여기에 매번 같은 지점을 밟고, 같은 무게의 물건을 옮겼다.
그녀는 무릎을 굽혔다. 손끝으로 바닥을 두드리니, 오른쪽 세 번째 판자 아래에서 텅 빈 소리가 났다.
'여기입니다.'
마라가 뒤에서 숨을 삼켰다. 공증관이 무릎을 꿇고 철제 잠금쇠를 확인했다. '열쇠를 넣으십시오. 그러나 한 번 열면 기록이 남습니다.'
'그래야죠.' 엘린은 열세 번째 열쇠를 넣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철판이 들렸다. 그 아래에는 작은 계단과 함께 좁은 회계실이 숨어 있었다. 방 안에는 장부 상자들이 줄지어 있었고, 상자마다 같은 표식이 찍혀 있었다. 엘린은 가장 위의 장부를 펼쳤다. 첫 장에는 곡물 손실, 두 번째 장에는 운송 지연, 세 번째 장에는 사육장 급식. 하지만 숫자를 끝까지 읽으면 손실이 아니었다. 같은 수량이 다른 이름으로 이동했다. 왕실 사냥장, 내궁의 사병 숙소, 정체불명의 '후원금' 계정. 마지막 줄마다 섭정공의 비밀 회계 표식이 아주 작게 찍혀 있었다.
'이건 회계가 아닙니다.' 마라가 말했다. '세탁이에요.'
도윤은 장부 한쪽에 찍힌 마을 이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우리 곡식이 여기로 왔다는 겁니까?'
엘린은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에는 자신이 사인한 적 없는 번호들이 있었다. 그러나 형식은 그녀의 옛 결재 양식과 똑같았다. 너무 똑같아서,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빌려 흘려보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분노보다 먼저 식은땀이 났다. 자신이 모른 척할 수 있는 범위를 이미 지나쳤기 때문이다.
'원본을 가져가면 더 안전합니다.' 공증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서 복사만 남기고 봉인하면, 적어도 오늘 밤은 버틸 수 있습니다.'
'오늘 밤만으론 부족합니다.' 엘린이 대답했다. 그녀는 장부의 마지막 장을 덮고, 바닥의 곡물 자루들을 다시 보았다. 숨겨진 방의 절반은 비어 있었다. 나머지 절반엔 올해 겨울을 버틸 만큼의 양이 남아 있었다. 빼돌린 뒤 남겨 둔, 조롱 같은 양이었다.
도윤이 날카롭게 물었다. '지금 당장 사람들 몫으로 빼낼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그럼 왜 머뭇거립니까.'
엘린은 잠깐 눈을 감았다. 그녀가 머뭇거린 이유는 하나였다. 이 방을 연 순간, 왕실은 곧 여길 숨기려 들 것이다. 장부를 옮기기 전에 증거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봉인만 남긴 채 나가면, 피해자들은 또 한 번 숫자만 보고 끝날지도 모른다. 눈으로 확인한 사실만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사람들을 숫자에서 빼앗아 와야 했다.
'전부는 못 빼냅니다.' 엘린이 말했다. '하지만 보이는 만큼은 지금 꺼내겠습니다.'
그녀는 도윤에게 장부 한 권을 건넸다. 그리고 공증관에게 말했다. '공동 봉인서에 적으십시오. 북쪽 창고 숨은 회계실, 장부 다섯 권, 곡물 비축 일부를 주민 대표에게 인계. 긴급 봉인 책임은 엘린 로제트가 진다.'
공증관의 손이 멈췄다. '그렇게 쓰면, 나중에 이 일을 뒤집을 수 없습니다.'
'뒤집을 생각이 없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의 개인 인장을 꺼내, 봉인서 아래에 천천히 눌렀다. 인장이 종이 위에서 한 번 뜨거워졌다 식는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 짧은 순간, 그녀는 혼자였다. 왕실도, 가문도, 변명도 없었다. 오직 서명만 있었다.
도윤은 서류를 받아 들고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아직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건 가져가겠습니다.'
그가 장부를 가슴에 품는 순간, 마당 쪽에서 마차 바퀴 소리가 끼익 하고 멈췄다.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창고 문 앞에 검은 제복의 사자가 서 있었다. 그는 비틀린 은색 봉투 하나를 높이 들었다. 봉투 앞면에는 열세 번째 열쇠와 같은 표식이 찍혀 있었다.
'엘린 로제트.' 사자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섭정공 비밀 회계실 명의로 새벽 감찰 소환장입니다. 창고를 연 자, 그리고 증거를 만진 자는 오늘 해가 뜨기 전 출두하셔야 합니다.'
엘린은 봉투를 받지 않았다. 대신 그 표식을 봤다. 장부의 표식보다 더 날카롭게 찍힌, 살아 있는 명의의 흔적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알았다. 이 표식은 단순한 도장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지금 이 장부를 알고 있으며, 이미 대응을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마라가 엘린의 옆으로 반 걸음 다가섰다. '가죠?'
엘린은 검은 봉투를 바라보다가, 막 봉인된 장부 더미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짧게 숨을 들이켰다.
'갑니다.'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빈손으로는 안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