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첫 줄
윤세령은 청혼서 첫 줄에 이혼 조건부터 썼다.
`제1조. 양 당사자는 국경 기록고가 열린 날부터 1년이 지난 뒤, 상대의 허가 없이 본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검은 잉크가 마르자 맞은편의 황태자 이든이 종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왕관도 훈장도 없이 짙은 청색 셔츠 차림이었다. 비밀 협상이라기보다 야간 서고의 벌점 회의처럼 보였다.
"보통 청혼서에는 오래 함께하자는 말을 먼저 쓰지 않습니까?"
"보통 청혼은 끝내는 방법을 숨기니까요."
"나는 숨길 생각이 없습니다."
"그 말을 조항으로 쓰자는 뜻입니다."
세령은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국경 기록고는 두 왕국 사이 협곡 아래에 있었다. 백 년 전 전쟁을 끝낸 `쌍인 조약`은 기록고 문을 양국 왕실의 혼인 대표에게만 열도록 만들었다. 지난달 국경 마을 세 곳이 지도에서 사라진 뒤, 기록고 안의 옛 결계도를 확인해야 했다.
이든에게는 왕실 자격이 있었다. 세령에게는 북부 옛말을 읽을 지식과, 반대 왕국 로제아의 방계 혈통이 있었다.
둘이 결혼하면 문이 열렸다.
"제 대가는 기록고 번역본의 공동 저작권과 로제아에 억류된 제 동생의 외교 면책입니다."
세령이 말했다.
"이미 동의했습니다."
"문서에는 '황실이 적절한 보호를 검토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면책이 아닙니다."
이든은 원안을 다시 읽었다. 입술이 아주 조금 굳었다.
"법무관이 말을 흐렸군요. 고치겠습니다."
그가 직접 문장을 지우고 `혼인 승인과 동시에 조건 없는 외교 면책을 발효한다`고 썼다.
세령은 그제야 두 번째 조항으로 넘어갔다.
"제2조. 기록고 접근이 실패해도 동생의 면책은 취소되지 않는다."
"나를 꽤 믿지 않는군요."
"전하를 믿는 것과 전하 이후의 황실을 믿는 것은 별개입니다."
"좋습니다. 그 차이도 적죠."
이든은 웃지 않았다. 기분이 상한 대신 문장을 다듬었다. 세령은 그 반응을 첫 번째 유용한 정보로 기록했다.
### 2. 열두 가지 경계
협상은 자정을 넘겼다.
제3조는 재산 분리, 제4조는 독립 거처, 제5조는 공식 일정 최소 고지 시간이었다. 제6조에서는 두 사람이 처음으로 펜을 놓고 오래 다퉜다.
`공개석상에서 상호 보호 의무를 진다.`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세령이 말했다.
"배우자가 공격받는데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비판과 공격을 누가 구분합니까? 제가 전하 정책에 반대할 때도 보호한다며 발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든은 잠시 생각한 뒤 문장을 나눴다.
`신체 안전에 즉각 위험이 있을 때 서로 보호한다.`
`정치적 발언, 직무 판단, 공개 반대는 보호를 이유로 제한하지 않는다.`
제7조는 세령이 준비해 온 문장이었다.
`어느 당사자도 혼인을 근거로 상대의 신체, 침실, 임신, 후계 생산을 요구할 수 없다.`
이든은 고치지 않고 서명했다.
"놀라지 않으시네요."
"내가 먼저 넣었어야 할 조항입니다."
"귀족원은 삭제를 요구할 겁니다."
"그럼 내가 거절하죠."
세령은 고개를 저었다.
"제 조항입니다. 거절도 제가 합니다. 전하가 대신 보호하면 귀족원은 제가 뒤에 숨었다고 기록할 겁니다."
이든은 펜 끝을 손가락으로 굴렸다.
"그럼 공개 심사에서 각자 자기 조항을 방어합니다. 상대가 요청하기 전에는 대신 답하지 않는다."
그것이 제8조가 되었다.
제9조는 비밀 정보의 범위, 제10조는 치료 결정권, 제11조는 계약 종료 뒤 명예 훼손 금지였다.
마지막 제12조 앞에서 세령은 이든을 보았다.
"기록고가 왜 지금 위험해졌는지 아직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국경 마을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건 모두가 아는 결과죠. 전하가 아는 원인은요?"
이든은 창밖을 보았다. 새벽 눈이 서고 창살에 걸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기 전 결계 일부를 시험 가동했습니다. 황실 명령이었습니다. 실패 기록은 봉인됐고, 나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세령의 손이 멈췄다.
"그 사실을 숨긴 채 제게 결혼을 제안했군요."
"말하면 당신이 거절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럼 제 선택을 이미 대신한 겁니다."
이든은 변명하지 않았다. 오래 침묵한 뒤 자기 서명 옆에 한 줄을 썼다.
`제12조. 공동 위험에 영향을 주는 과거 행위는 불리하더라도 계약 전에 공개하며, 누락이 확인되면 상대는 즉시 종료할 수 있다.`
"지금 종료해도 됩니다."
세령은 문을 보았다. 나가면 동생의 면책은 없고, 기록고 문도 열리지 않는다. 남으면 이든의 실패와 황실의 은폐를 함께 짊어진다.
그는 비용을 숨겼지만, 이제 비용을 아는 상태였다.
세령은 제12조 아래 서명했다.
"남겠습니다. 용서해서가 아니라 확인할 권한이 필요해서요."
"그 차이를 기억하겠습니다."
### 3. 잘린 반지
공개 심사는 국경 의회 원형당에서 열렸다.
로제아 사절과 제국 귀족원이 마주 앉았고, 중앙 석판 위에 쌍인 조약 원본이 놓였다. 고어로 된 조약은 세령 외에 완전히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귀족원장 하르트가 제7조를 읽고 코웃음을 쳤다.
"후계 의무를 거부하는 혼인은 기록고가 인정하지 않습니다. 원조약에 분명히 적혀 있소."
그가 조약 마지막 단락을 가리켰다.
`두 피가 하나의 후계로 이어질 때 문은 영원히 열린다.`
세령은 문장 위에 확대경을 놓았다. 앞 단락은 북부 고어의 목적격 어미를 썼지만 마지막 문장만 현대식 소유격이었다. 먹도 달랐다. 양피지의 균열 위로 글씨가 지나가 있었다.
"이 문장은 원조약 이후에 추가됐습니다."
하르트가 말했다.
"번역관 한 명의 주장일 뿐이오."
"주장이 아니라 문법과 물성입니다. 원조약에서 '피'는 혈통이 아니라 인장용 적색 안료를 뜻합니다. 같은 단어가 앞에서 세 번 쓰였습니다. 후계라는 단어도 원문에는 없습니다."
"당신은 자기 혼인을 편하게 만들려고 조약을 바꾸려는 거요."
제8조에 따라 이든은 침묵했다. 그의 손은 탁자 아래에서 주먹을 쥐고 있었지만 세령의 답을 대신하지 않았다.
세령은 계약서 사본을 들었다.
"맞습니다. 저는 이 혼인의 당사자라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로제아 측 고문서 감정관과 제국 측 재료 감정관에게 별도 검증을 요청했습니다. 두 보고서를 공개합니다."
양측 감정관이 일어났다. 결론은 같았다. 마지막 문장은 약 47년 뒤 덧붙여졌다.
하르트가 이든을 향했다.
"전하, 후계 의무 없는 혼인을 승인하면 귀족원 스물한 표를 잃습니다. 황위가 위험해집니다."
이든은 그제야 말했다.
"그 표를 유지하려고 타인의 신체를 계약 담보로 삼는 황위라면 이미 위험합니다. 제7조를 승인합니다."
세령은 자기 몫을 말했다.
"저도 제7조를 승인합니다. 이 조항을 이유로 로제아 윤가가 상속권을 박탈하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수용합니다."
두 사람이 각자 잃을 것을 공개하자 의회는 더 이상 보호와 강압을 혼동시키기 어려웠다.
표결은 한 표 차로 통과했다.
공증관이 두 겹의 은반지를 가져왔다. 영구 결합을 뜻하는 이음매 없는 반지였다.
세령은 계약서 칼로 반지의 가는 접합부를 잘랐다.
"무슨 짓이오?"
"우리 계약에는 끝이 있습니다. 반지도 그 사실을 숨기면 안 됩니다."
이든은 잘린 자기 반지를 받아 손가락에 끼웠다. 가느다란 틈이 손바닥 쪽으로 향했다.
"1년 뒤에도 계속 끼고 싶다면?"
"그때 새로 물어보세요."
"그 답도 계약에 넣을까요?"
"그건 계약 밖에 둡시다."
석판 아래에서 두 개의 열쇠가 올라왔다. 국경 기록고가 혼인을 인정했다.
### 4. 열세 번째
그날 밤 세령과 이든은 각자 보관할 계약서를 봉인했다.
열두 조항, 양측 서명, 의회 인장, 잘린 반지의 압흔. 모두 같았다.
세령이 자기 사본을 접는 순간 종이 뒷면에서 은빛 글자가 번졌다.
`제13조.`
"전하. 쓰셨습니까?"
이든의 계약서에도 같은 글자가 나타나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계약 상대를 사랑하게 될 경우, 상대는 본 계약에 관한 기억을 잃는다.`
`기억을 보존하려면 사랑한 쪽이 국경 기록고에 자신의 이름을 반납해야 한다.`
세령은 잉크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은빛 문장은 조약 원본과 같은 고어 문법으로 적혀 있었다.
"기록고가 추가한 조건 같습니다."
이든이 말했다.
"우리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계약을 종료합니까? 제12조로 가능합니다."
세령은 열쇠를 내려다봤다. 국경 마을 세 곳을 되찾을 수 있는 문이 내일 열린다. 지금 종료하면 열쇠가 사라질 가능성이 컸다.
"먼저 기록고에 들어가 제13조의 근거를 찾겠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군요."
"확인하지 않은 약속은 오늘 충분히 봤으니까요."
세령은 별지 한 장을 꺼냈다.
`제13조에 대한 공동 이의: 양 당사자는 동의한 적 없으며 집행을 유보한다.`
두 사람이 서명하자 은빛 글자가 잠시 흐려졌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기록고 열쇠 두 개가 동시에 뜨거워졌다.
쇠 표면에 새 문장이 나타났다.
`이의 접수.`
`심사는 기록고 내부에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