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정전된 터널
사람 머리 위에 뜬 숫자는 맥박보다 먼저 거짓말을 했다.
서이안은 뒤집힌 승합차 문에 무릎을 대고 안쪽으로 몸을 밀었다. 휘발유 냄새와 에어백의 화약 냄새가 터널 안에서 엉겼다. 휴대용 조명은 세 번 깜박인 뒤 붉은 빛으로 고정되었다.
운전석과 대시보드 사이에 낀 남자는 의식이 없었다. 호흡은 분당 여덟 번, 오른쪽 흉곽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안이 목 옆을 짚자 약한 맥박이 두 손가락 아래에서 도망쳤다.
그런데 남자의 이마 위에는 초록 글자가 떠 있었다.
`생존 기대치 82 / 구조 효율 3`
뒷좌석에서 스스로 안전띠를 푼 청년에게는 다른 숫자가 붙었다.
`생존 기대치 97 / 구조 효율 91`
"걸을 수 있습니까?"
"네. 저게 뭡니까? 누나도 보여요?"
"보입니다. 숫자 말고 제 손을 보세요. 저 불빛을 따라 터널 안쪽으로 가세요. 뛰지 말고, 벽을 짚고요."
청년이 차 밖으로 기어 나가자 천장 조명이 한꺼번에 꺼졌다.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창이 켜졌다. 휴대전화 화면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같은 높이에 떠 있는 반투명한 문장이었다.
`초기 재난 구역이 확정되었습니다.`
`04:40 첫 파동 도착.`
`지정 대피소 A-17: 수용 가능 인원 40.`
`등록 우선순위는 구조 효율에 따릅니다.`
터널 어딘가에서 누군가 웃었다. 너무 놀라면 나오는, 숨이 반쯤 끊긴 웃음이었다. 곧 비명과 욕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이안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04시 12분. 스물여덟 분 안에 차량 열두 대와 버스 한 대에서 사람을 꺼내야 했다.
"119 서이안입니다! 걸을 수 있는 분은 비상등이 켜진 버스 앞으로 이동하세요. 다른 사람을 일으키지 말고 자기 상태부터 말해 주세요."
"119가 아직 있긴 합니까?"
형광 조끼를 입은 남자가 중앙 차선을 넘어왔다. 터널 경비업체 반장 박철우였다. 그의 손에는 접이식 차단봉이 들려 있었다.
"방재실 통신이 죽었습니다. 출구 셔터도 안 열려요. 대신 저 안내대로 해야 합니다. 점수 높은 사람부터 마흔 명."
"그건 대피 등록 순서입니다. 치료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효율이라잖아요. 살리기 쉬운 사람부터 살리라는 뜻 아닙니까?"
이안은 운전석 남자를 가리켰다.
"저 사람은 가슴 안에 공기가 차서 숨을 못 쉽니다. 바늘 하나면 시간을 벌 수 있어요. 효율 점수는 3이고요."
박철우의 시선이 남자의 숫자와 이안의 얼굴 사이를 오갔다.
"그럼 시스템이 틀렸다는 겁니까?"
"무엇을 계산한 건지 모른다는 겁니다. 모르는 계산에 환자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안은 구급 가방에서 굵은 카테터를 꺼냈다. 차체가 눌린 틈으로 팔을 넣고 갈비뼈 사이를 찾았다. 바늘이 들어가자 갇혔던 공기가 짧은 뱀 소리처럼 빠졌다. 남자의 호흡이 열한 번으로 늘었다.
초록 숫자는 그대로였다.
구조 효율 3.
그때 이안은 숫자가 생존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 2. 마흔 자리
04시 24분, 이안은 버스 앞 바닥에 절연 테이프로 세 구역을 만들었다. 즉시 처치가 필요한 사람은 빨강,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노랑,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초록이었다. 검은 구역은 만들지 않았다. 아직 누구에게도 끝났다고 말할 때가 아니었다.
생존자는 쉰여섯 명이었다.
지정 대피소는 터널 관리용 방화문 안쪽이었다. 문 위의 숫자는 냉정하게 줄었다.
`남은 자리 17.`
박철우가 초록 표식을 받은 사람들을 문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혼자 걸을 수 있는 분부터! 가족이라고 붙잡고 있으면 둘 다 못 들어갑니다."
"저 아이 엄마예요! 애만 들여보내 주세요!"
"아이 점수가 12입니다. 뒤로 가세요."
이안은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렸다. 여덟 살쯤 된 아이가 버스 바퀴 옆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멀쩡했지만 들이마실 때마다 목 아래가 움푹 꺼졌다. 안전띠 충격으로 기도가 부어오르고 있었다.
"점수는 보지 마세요. 이름이 뭐예요?"
"소, 소율이요. 김소율."
아이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녀의 손에도 피가 흘렀지만 상처를 느끼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이안은 산소 마스크를 씌우고 약을 준비했다. 대피소 안에 산소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구급차에는 휴대용 산소통이 세 개, 흡인기 한 대, 배터리는 61퍼센트 남아 있었다.
허공의 안내창 아래에 작은 글씨가 지나갔다.
`독립 생존 환경은 차폐, 호흡 가능 대기, 30분 유지 전력, 구조 신호를 충족할 때 임시 대피소로 심사할 수 있습니다.`
이안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박 반장님. 관광버스 문 닫힙니까?"
"앞문은요. 뒤쪽 유리가 깨졌습니다."
"방화포로 막을 수 있어요. 구급차 배터리를 버스에 물리면 비상 환기와 난방이 얼마나 갑니까?"
"차를 못 움직이게 됩니다. 시동도 장담 못 해요."
"얼마나 갑니까?"
박철우는 반사적으로 터널 설비가 아니라 버스 계기판을 봤다. 경비원이 되기 전 시내버스를 몰았다고 조금 전 말했었다.
"환기만 돌리면 두 시간. 난방을 끊었다 붙였다 하면 세 시간까지."
"첫 파동은 몇 분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도 마흔 명 밖에 세 시간은 생깁니다."
"시스템이 인정 안 하면요?"
"그때도 밀폐된 차와 산소는 남습니다. 지금 문밖에 세워 두는 것보다 낫습니다."
박철우는 대피소 문을 보았다. 자기 아내가 이미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는 차단봉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뭘 하면 됩니까?"
이안은 처음으로 그에게 환자 분류표를 건넸다.
"마흔 자리에는 혼자 호흡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부터 넣으세요. 걸을 수 있는 분들에게는 선택을 설명하고 버스 작업을 부탁하세요. 강제로 빼지는 마시고요."
"그러다 다들 안 돕겠다고 하면?"
"그 선택도 기록해야죠."
### 3. 두 번째 대피소
04시 32분부터 터널은 거대한 수술대가 되었다.
정비사였다는 청년이 구급차 보닛을 열었다. 등산 동호회 사람 둘이 버스 뒤 유리에 방화포를 겹쳐 붙였다. 편의점 야간 근무자는 생수와 비닐봉지를 모았다. 김소율의 어머니는 다친 손으로 산소통 밸브를 잡았다.
모두의 효율 점수가 조금씩 내려갔다.
일을 할수록 점수가 떨어졌다. 자기 몸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데 쓰지 않은 시간이 감점되는 모양이었다.
"이거 진짜 사람 약 올리네."
정비사가 자기 머리 위의 74가 51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말했다.
"꺼지지도 않아요?"
"안 보려고 하면 됩니다."
이안은 그렇게 말했지만 자신도 계속 숫자를 봤다. 숫자 아래에 훨씬 작은 문장이 생겨 있었다.
`비효율 행동 누적: 312초.`
승합차 운전자를 꺼내는 데 유압 장비를 쓸 수 없었다. 이안과 세 사람이 철제 지렛대를 끼우고 눌린 대시보드를 손바닥 한 폭만큼 들어 올렸다. 남자를 빼낸 순간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졌다.
04시 37분.
터널 입구 쪽 어둠이 물결처럼 일그러졌다. 차량 유리들이 차례로 안쪽으로 휘었다가 돌아왔다. 첫 파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열세 명이 누워 있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여덟 명이 돌봄을 맡았다. 하지만 허공의 심사창은 마지막 조건에서 멈췄다.
`구조 신호: 미충족.`
휴대전화 통신은 없었다. 버스 비상등은 구조 신호로 인정되지 않았다.
"구급차 경광등을 떼죠."
정비사가 말했다.
"배선 자르면 다시 못 붙일 수도 있습니다."
"차도 어차피 못 움직인다면서요."
이안은 구급차를 보았다. 입사하고 처음 배치받은 차는 아니었지만, 지난 삼 년 동안 수백 번 함께 출동했다. 오른쪽 문 아래에는 지난 겨울 빙판길에 긁힌 흠집이 그대로였다. 도시가 돌아오면 변상 보고서부터 써야 할 물건이었다.
도시가 돌아온다면.
"떼세요. 배터리 직결하고 지붕 위에 올립니다."
박철우가 물었다.
"당신은 어디 들어갈 겁니까?"
지정 대피소 자리는 세 개 남았다. 이안이 고개를 돌리자 압궤 환자 한 명, 임신부 한 명, 산소가 떨어지면 위험한 노인이 보였다.
"저 셋이 들어갑니다."
"당신 점수, 이제 0입니다."
이안의 머리 위 숫자는 정말 0이었다.
"그래서 제가 들어가면 제일 비효율적이겠네요."
"그 논리가 아니잖습니까."
"이제 아셨네요."
경광등 배선이 잘렸다. 정비사가 두 가닥을 임시 단자에 물리자 붉고 푸른 빛이 버스 지붕에서 회전했다. 심사창의 마지막 줄이 바뀌었다.
`독립 생존 환경 B-1 승인.`
`수용 가능 인원 21.`
사람들이 환호할 틈은 없었다. 첫 파동이 터널을 통과했다.
소리는 없었다. 대신 모든 금속이 동시에 울었다. 이안은 버스 옆 바닥에 엎드려 귀를 막았다. 피부 아래를 차가운 모래가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켜져 있던 차량 전조등이 푸르게 타올랐고, 대피소 밖에 남은 기름 웅덩이에서 검은 풀 같은 것이 솟았다.
누군가 이안의 발목을 붙잡았다. 승합차 운전자였다. 대피소까지 세 걸음이 남았는데 남자의 맥박이 끊어지고 있었다.
이안은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서른 번.
파동은 47초 만에 지나갔다. 남자의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 4. 0점의 이름
04시 46분, 터널 안에는 쉰세 명의 숨소리가 남았다.
한 명은 이안의 무릎 앞에서 죽었다. 사고 직후 터널 밖으로 도움을 청하러 갔던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누구도 그 숫자를 승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김소율의 기도 부종이 조금 가라앉았다. 아이는 산소 마스크 너머로 이안을 보고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선생님도 여기 들어와요."
"조금 있다가. 다른 사람부터 볼게."
아이 어머니는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죽은 운전자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침묵이 이안에게는 맞는 반응처럼 느껴졌다. 산 사람의 수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지우지는 못했다.
박철우가 구급차 옆에 주저앉았다.
"저 사람부터 꺼냈으면 살았을까요?"
"모릅니다."
"당신도 모르는 게 있군요."
"제가 아는 건 아주 적습니다. 호흡, 맥박, 출혈, 지금 쓸 수 있는 장비. 그래서 모르는 점수보다 그걸 먼저 봅니다."
터널 끝이 희미하게 밝아졌다. 실제 새벽빛이 아니라 두 번째 안내창이었다.
`첫 파동 정산을 시작합니다.`
`개인 구조 점수: 0.`
`규정 외 생존 기여: 13.`
`안전 등급을 박탈합니다.`
이안은 마지막 줄까지 읽었다. 예상한 벌이었다. 그런데 창이 닫히지 않았다.
`현장 분류 기록이 기준 충돌 사례로 채택되었습니다.`
`임시 분류관 후보: 서이안.`
`05:58 두 번째 파동.`
`다음 구역의 수용 가능 인원을 후보가 직접 배정하십시오.`
그 아래에 지도 하나가 열렸다. 터널만이 아니었다. 병원, 지하상가, 아파트 단지, 학교 운동장. 붉은 점이 도시 전체에서 맥박처럼 깜박였다.
이번에는 숫자 옆에 사람 이름이 붙어 있었다.
맨 위에는 터널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지 않은 두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이안은 피 묻은 장갑을 벗지 못한 채 지도를 확대했다.
두 번째 새벽까지 한 시간 십이 분 남아 있었다.